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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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마치 장르소설을 읽듯 사람들끼리 먹고 먹히는 장면(물론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과 식량을 찾아 헤매다 벙커를 찾아 실컷 맛있는 것을 먹는 장면에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다보니 이 작품이 정말 심오한 상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시계가 1시 17분에 멈춰있다고 했는데, 이건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있는 모든 세상이 멸망하는 부분인 1장 17절이며 1장 18절부터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세계가 다시 열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뒷부분에서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엘리라는 건 엘리야를 뜻한다는,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가도.

다시 글을 읽다보니 지금 막 3살이 된 나의 조카의 부드러운 살결에서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이 살아났다.

 

로드의 띠지를 벗겨보면 작은 아이와 큰 남자의 실루엣이 거칠게 그려져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혈육이라는 것.

이것은 얼마나 희생의욕을 불러오는 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막내딸이었다.

거친 아빠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갔고, 아빠가 싸준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 갔다.

이제는 머리가 거의 벗겨지고 흰머리가 더 많은 아빠지만 어릴적 잡고 걸었던 길에서 느꼈던 그 따스함과 든든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함께 있어도 말이 없는 부녀지간이 되었지만 어릴 때 그 든든하던 아빠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손의 연약함과 부드러움이 자신에게 어떤 희망이 되는지.

그리고 든든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손의 따스함과 든든함이 자신에게 어떤 안정이 되는지.

 

로드는 말 그대로 아이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스토리를 상징적으로 써내려간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거친 세상 속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희망은 혈육이라는 것.

그 혈육은 내가 세상을 떠나도 계속 살아 갈 것이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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