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백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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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는 유혹이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혹자들은 여성들이 섹시함을 강조하면 그것이 여성이 성적행위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남자들의 성적요구에 놀아나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드리야르는 여성이 지금까지 세상의 은근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유혹이라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여성이라는 동물의 한 종류에 대해 참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우선 여성이기도 하며, 여성은 남성보다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내가 추구하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나의 취향은 단연 여성성을 좋아한다. 성적으로 끌리지는 않지만 시각으로 즐기는 것은 남성보단 여성이 즐겁다. 그래도 내가 여성에게 접근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되고 세뇌된 이성중심주의의 연애관과 내가 양성애자가 되었을 때 잃을 만한 그 많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양성애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여자를 사랑하면 내가 가진 여성성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성성에 흠이라도 난다면 나는 손해를 볼 것이다. 난 여성성을 이중적으로 사랑한다.

 

그렇다면 보드리야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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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은 본능의 차원에 속하지 않고 기교의 차원에 속한다.

즉, 유혹은 에너지의 차원에 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와 의례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유혹은 늘 신의 질서를 파괴하려 한다.- 설사 그것이 생산의 질서나 욕망의 질서가 되었다 할 지라도 말이다.

 

모든 정통성의 입장에서 보면, 유혹은 언제나 마법이고 기교이다.

 

성해방의 단계는 성을 확정할 수 없는 단계이다. 이제는 더 이상 결핍도, 금기도, 한계도 없다. 이는 모든 준거원칙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는 결핍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다. 만약 결핍이라는 망령을 없애버린다는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면, 이 논리는 사라지게 된다. 욕망 역시 결핍에 의해서만 지속된다. 욕망이 완전히 요구로 바뀌면, 다시 말해 욕망이 전면적으로 작동하면, 상상계를 상실한 욕망은 실재성이 없게된다. 욕망은 어디에나 있지만 일반화되고 있는 모사 속에 있다. 성 역시 어디에나 있지만, 성욕 속에는 없다.

 

성과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는 정신분석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방법인데(정신분석의 이론체계는 성적인 것이므로) 이 방법은 남성/여성의 대립을 넘어서 이해되는 여성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대립은 본질적으로 남성적인 것이고 성적인 궁극목적을 지니기 때문이며 또한 대립의 구조가 계속 존속하면 무너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혹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은 표지가 있는 항도 표지가 없는 항도 아니다. 예전에 자신이 상실했을지도 모르는 욕망이나 쾌락의 '자율성', 육체의 자율성, 말이나 글쓰기의 자율성을 역시 회복하지 못한다. 어쩌면 여성은 자신의 진실을 찾지 못한 채 유혹한다.

 

오직 유혹만이 운명으로서의 해부학에 철저하게 대립된다. 오직 유혹만이 육체에 독특한 성적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 성적의미로 부터 기인하는 불가피한 남근적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유혹은 매우 지적인 것이다. 유혹은 섬광같은 확실성을 지니고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까닭에 더욱 그러하다.

 

여성은 결코 지배되지 않았으며, 언제나 지배자였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성과 모든 권력을 가로지르는 형태로서의 여성이자, 무성의 은밀하고 신랄한 형태로서의 여성이었다. 요컨대 그 피해가 오늘날 성의 모든 범위에서 느껴질 수 있는 도전으로서의 여성이었다.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바로 이 도전, 유혹의 도전이 아니었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남성은 잔류적인 존재, 부차적이고 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따라서 남성은 방어수단과 제도와 책략의 도움으로 자신을 지켜나가야 했다.

 

그리하여 여성이 유일한 성이며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초인간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요컨대 남자들이 그들의 권력과 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여자의 타고난 우월적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주된 원인은 남근에 대한 선망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여자의 수태능력에 대한 남자의 질투이다.

 

배제된 형태가 지배적인 형태를 물리치고 은밀히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요컨대 유혹적인 형태가 생산적인 형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여성성은 광기와 같은 쪽에 있다. 광기가 정상화되어야 하는(그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무의식이라는 가정에 힘입어) 이유는 광기가 은밀히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성이 시대에 맞게 바뀌고 정상화되어야 하는 (특히 성 해방 속에서) 이유도 여성성이 은밀히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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