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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역사 - 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7월
평점 :
<한류의 역사 서평>
한류에 대해서 섬세하고 냉철하게 분석한 ‘한류의 역사’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한류를 잘 정리한 서가처럼 체계적으로 조사, 분석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까지, 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 여행 속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732쪽이라는 많은 분량의 책이지만 읽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80년대 이전은 경험하지 못한 문화였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었고, 90년대 이후는 직접 경험했던 문화이기에 공감하며 추억을 되살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류를 위대하게만 생각하는 단편적인 시선을 가지신 분과,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주역인 ‘빠순이’들에 대한 한심한 생각을 하시는 분과, 앞으로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쳐나갈 계획을 세운 분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네요.
이 책은 단순히 한류에 대해서만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한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 문화적 배경, 국내외 중심 사건들을 함께 분석했습니다. 덕분에 우주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위성의 시선으로 한류 파동을 바라보았습니다.
촘촘하게 잘 정리한 내용을 읽다보면 과거의 어떤 선택이 한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고, 발목을 잡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지혜롭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이 책도 지혜롭게 한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도움을 줄 내용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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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소개해 드릴 테니 여러분도 잠시 한류의 역사를 여행해 보시죠.
<1960, 1970년대>
- 최초의 한류는 국내에서 발생. 한국 대중문화의 모태인 ‘미 8군쇼’. 미국위문협회에서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고 이것을 준비하던 용역 회사들이 훗날 연예 기획사의 효시가 되었음. 이때 김 시스터즈가 큰 인기를 얻음.
- 미국 헐리우드 영화가 강세를 보이던 시절에서 1960년대에는 국산 영화 상영을 의무화하는 ‘스크린 쿼터제’가 도입.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이런 제도가 국내 대중문화 산업을 보호하고 힘을 실어주었음)
- 종로 ‘세운상가’의 뜻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인데, 이곳이 1970년도에 미국 문화에 굶주린 젊은이들이 찾는 곳으로 떠오름.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였고 불법 음반(빽판)의 집결지.
- 1970년대 대학가요제, 해변 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장으로 젊은 세대의 대중음악 발전.
<1980년대>
- 컬러 방송의 시대. MTV 개국으로 뮤직 비디오 전성시대 열림. 음악이 듣는 것만이 아닌 보는 것으로 바뀜. MTV의 국경을 파괴한 선곡 덕분에 K-POP도 소개됨. 이때 이수만은 유학길에서 에이전시의 존재를 체험.
- 통금이 해제되자 심야 극장이 발전. 조용필의 시대(치밀한 매니지먼트 가세, 오빠 부대가 커지고 음반 시장이 10대들에 의해 움직임). 서구 음악에 쏠려 있던 시장의 주도권이 우리 대중음악으로 옮겨감.
- 자동차 수출 커짐, 아시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 개최(세계로 활동 영역을 넓힌 한국)
<1990년대>
- SBS개국(10년이 넘게 KBS, MBC가 누린 독과점 체제 끝. 방송국 간의 저질 경쟁이 심화 되었다는 평도 있으나 시청률 경쟁 덕분에 드라마 수준 높아짐. 연예 기획사의 발전에도 영향을 줌. 공채를 하지 않아서 대형 연예 기획사 등장)
- NASA에서 일하고자 했던 꿈을 엔터테인먼트 사업 방향으로 바꾼 이수만(뉴 키즈 온더 블록의 성공을 본보기 삼아 아이돌 육성 준비).
-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젊은 층에서 큰 인기). 최초의 트랜디한 드라마 ‘질투’ 중국에 수출하여 큰 성공을 거둠(그보다 앞서 수출된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
- 문화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해진 시대(‘쥬라기 공룡’ 영화의 흥행 수익이 한해 8억 5천만, 이것이 영상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설득력을 보여줌). 제일제당(현재CJ) 진출(드림윅스의 사업 파트너로 경쟁했던 삼성과 제일제당).
- 세계화 시대. 영어 열풍. WTO 출범. 케이블TV시대 열림. KM, Mnet, 인터넷, 닷com열풍.
- HOT 등장. SM, YG, JYP 대형 엔터테인먼트 본격 활동기.
- 홍콩이 영국 식민지배 청산하니 한류에는 기회가 열림. ‘별은 내 가슴에’, ‘사랑이 뭐길래’ 수출로 뜨거운 관심, HOT 같은 한국 대중음악도 인기 높아짐.
- IMF에 한류가 탄력 받음. 국내 시장 집중이 아닌 ‘밖으로 나가야 산다!’는 인식이 퍼짐.
- 일본 대중문화 국내 개방(일본 베끼기 현상도 심해짐).
-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함.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헐리우드적인 영화 ‘쉬리’. 공연 ‘난타’, ‘명성황후’, ‘점프’등 세계 시장 진출.
<2000년대>
- 노래방 문화가 전국에 퍼짐. 프로게이머들의 활약
- 한국 드라마 수출 부흥기. 일본에서는 보아가 큰 인기를 얻음.
- ‘친구’, ‘JSA’, ‘겨울연가’, 2002한일 월드컵(뜨겁게 뭉치는 국민들) 등 각종 신드롬 발생.
- MP3 디지털 혁명. 소리바다 같은 무료 음원 사이트 생겼지만 위기를 기회로! 재빨리 디지털 시장으로 전환.
- 리메이크 판권 수출. 한국 배우들의 해외 진출. 한류 열풍이 거세지니 비판의 시선도 생김.
-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촬영 장소나 협찬 브랜드 등 다른 사업도 발전함(한류가 문화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라 IT, 자동차, 휴대폰 등 다른 사업에서도 높아짐).
- 한류 부작용도 생김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여성 성매매 인기. 혐한류 거세짐. 멜로드라마 과잉. 자기 복제 콘텐츠. 수익 분배의 양극화. 한류가 한국적인 것을 파는 게 아니라 외국 문화의 원형에 빨대 꽂고 버틴다는 비판. 주체성 없는 로봇 같기에 처음부터 한류는 존재한 적 없다는 주장도 생김)
- 미드 열풍(프리즌 브페이크). 칙릿 열풍. 북한에까지도 한류 열풍. ‘한드는 막장, 일드는 과장, 미드는 긴장’이라는 말 나옴.
- 유투브가 국내 미디어 시장에 진입.
- SNS가 제2 한류의 기회가 됨. 온라인으로 미리 반응을 체크할 수 있어 시행착오 줄임.
- 대형 연예 기획사들의 아이돌 육성에 인성교육 강조(한국은 연예인을 공인으로 간주하고 높은 도덕성까지 요구하는 유별난 나라)
- CJ엔터테인먼트 탄생.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나는 가수다’같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 열풍. 예능 포맷도 해외에 수출. 뽀로로, 로보카 폴리 같은 애니메이션의 세계 시장 진출.
- 유투브를 통한 급속한 한류 확산. 1인 방송의 급증(크리에이터, 유투버, V로거)
- 한류가 거세지면서 질투와 반감의 시선도 커짐. K-POP의 성공요인 분석(장기계약, 스파르타식 훈련, 사생활 관리 등).
-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던전 앤 파이터’ 게임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 확보.
- 스타 PD, 작가들의 중국행(제작 인력의 해외 유출 심각). 중국 거대 자본이 국내 제작사 인수(차이나 머니의 습격). 한류의 중국화(중국 시장에 맞추기 위해서 제작 초기부터 노력. 단기로는 돈을 벌겠지만 앞으로 기술력만 유출되고 자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큼). 중국 시장 눈치 보기(트와이스 쯔위의 ‘청천백일만지홍기 사건’)
- 다국적 혼성 그룹 기획이 늘어남.
- BTS 출격! 국내파, 촌놈, 흙수저 아이돌 자처. 청춘의 생각, 꿈, 사랑의 스토리. 팬들과의 소통이 높은 그룹(편견과 억압 속에 성장한 그룹). BTS가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음(싸이는 2위에 그친 이유가 미국 내 라디오 선곡 횟수가 장벽이었는데, BTS는 팬클럽 아미들의 영향으로 가능해짐.)
-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최고 작품상 수상.
- 페이커 같은 프로게이머가 세계적인 인기(K게임 시장이 K팝의 1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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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만든 요인 10가지 분석은 621페이지부터 나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찬찬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 뛰어난 혼종화, 융합 역량과 체질
- 근대화 중간 단계의 이점과 ‘후발자의 이익’
- ‘한’과 ‘흥’의 문화적 역량
- ‘감정 발산 기질’과 ‘소용돌이 문화’
- 해외 진출 욕구와 ‘위험을 무릎 쓰는 문화’
- ‘IT강국’의 시너지 효과
- 강한 성취 욕구와 평등 의식
- 치열한 경쟁과 ‘코리안 드림’
- 대중문화 인력의 우수성
- 군사주의적 스파르타 훈련
‘한류의 역사’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콜럼버스 효과’입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나 혁신을 이룬 선구자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데요. ‘선발자의 불이익’을 의미합니다. 콜럼버스는 황금의 땅 인도를 발견했다는 것에 사로잡힌 후, 별로 이득 없이 신대륙에서 금광을 찾다 씁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견을 발판 삼아 신대륙에 진출한 2세대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이것은 ‘후발자의 이익’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 선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면 선발자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상심할 일은 아니죠. 오히려 후발자의 이익을 누리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한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문화에 사로잡힌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후발자의 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베끼기를 했던 한국이 표절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억울하고 손해 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겠죠.
이 책은 지금의 한류가 다변화와 성숙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합니다. 지금까지의 한류는 대부분 민간 부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정부는 뭘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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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업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것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한류에 대해서 저도 무척 자긍심을 느낍니다. 책을 읽으며 한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류는 결국 내실이 탄탄해야 외부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응원해야 바깥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국내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메이드 인 코리아’를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한류를 이끌 주역들도 국내 시장은 무시한 채 해외 시장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국내에 뿌리를 둔 단계적 진출을 계획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한류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또한 대중문화와 상업성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지나치게 상업주의만 강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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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떠올리면 음악, 드라마, 연예인 정도만 떠올렸는데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게임, 애니메이션, 다양한 수출 산업, 그리고 현재 떠오르는 시장인 웹툰이나 웹소설, 1인 방송 분야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역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미래의 인재를 키워낼 엄마로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현재 큰 시장을 차지하는 유투버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빠져 있었습니다. 유투버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들이 한류 시장에 끼친 상업적 문화적 영향도 궁금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언텍트 시대에 한류의 새로운 주역이 될 수 있기에 다루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류의 미래’라는 책이 나온다면 이 분야에 대해서도 언급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