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평점 :
불친절해서 좋은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의 책 <끌림>에 이은 두번째 책 리뷰이다.
7년만에 나온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예고없이 솟구친 좋아하는 감정을 담백하게 함축한 제목만으로도 설렜는데,
책을 덮자마자 다시 첫장을 넘기고 있었다.
테잎이였다면, 늘어진 테잎이 되었을텐데, 책이라 참 다행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니
첫마음을 주면 잊을 수 없는 사랑이랄까.
여행산문집이지만 그가 어느 나라 어느 장소를 갔는지 알 수 없다.
사진집을 방불케 하는 사진을 품었지만, 사진 속에서도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언급된 사람이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인지, 추억속 사람인지도 헷갈린다.
가끔 그의 글 속에서 내 추억 속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목차도 없다. '논리'와 '구성'은 풀어던져 놓고 맘껏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참 바람직한 여행 산문집 아닌가.
이병률이 '시간 벌어온 여행',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이병률은 배고프겠다와 배고팠지?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저 둘의 차이를?)
사랑을 잃고 양파를 볶다가 짐을 싼 시인이며, 여행길에서 토끼를 기르겠다고 토끼를 산 대책없는 이다.
그는 여행길에서 앞을 볼 수 있다면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고,
아버지가 혼자 떠났던 여행길을 사진만을 들고 떠난 아들과 배고파서 거짓말을 한 여인을 만난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니 그 사랑의 빛깔 또한 가지각색이다.
한 권의 책에 그의 길 위에서 만난 인연, 부표처럼 떠오르는 생각, 그리고 추억들이 오롯이 담겼다.
'색'으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이야기

"애초 분홍은 잘못 태어난 색, 색이 되려고 태어난 무엇이 아니라
공기가 되려는 것을 한사코 잡안놓은 것. 색깔의 사생아.."
"주홍은 배고픔의 색깔.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
사랑에 굶주린 사람, 사랑에 병든 사람이나 병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주황이다.
소원을 불에 태우면 그 색이 주황이다."
"흰색은 반성문 같다. 실제로는 적을 것 없으면서도 마음으로 눈으로 빼곡이 적어내려갈 수 있는 것 같은"
"사랑에 미쳐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보라색은 볼 수 없을.."
"오래된 빨강을 치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물감을 끼얹고 다시 당신이 나에게 물감을 끼얹으면
나도, 당신도 다시는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히 충/격/적이다.
분홍과 주황 등의 색깔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나는 그의 낯선 표현들 속에서 갇혔던 표현의 틀이 깨지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고..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책을 읽다가 한 귀퉁이에 긴 글을 적었다.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사진을 싣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책을 읽다말고 자꾸만 저자 소개 사진을 들여다 본다.
"사랑하냐고 묻는 건, 단지 그걸(사랑) 만지고 싶어서 일텐데..."
"당신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사람. 안되는 사람이 아니라 불가능한 사람"
단 한번의 여행을 떠나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여행길에서 서성이는 이병률,
분홍과 보라로 삶을 사는 사람이 회색으로 살고 있는 이병률 때문에 기분이 '지랄맞다'
또, 바/람/이 분/다 뭔/가/꼼/지/락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