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 이후
서정윤 엮음, 신철균 사진 / 이가서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상한 버릇과 우연을 가장한 우주의 답 사이에 '시집'이 있다.

영화 '시'에서도 봤듯이 '시'가 사라져가는 시대, 의식적으로 정기적으로 '시집'을 가지려 했다. 시를 느끼는 '안테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가장 가까운 곳에 꽂아두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번잡할 때 눈을 감고 책장을 펼친다. 펼쳐진 페이지에서 우연을 가장한 우주의 '답'을 찾는다.

제법 맞았고 나름 해답을 찾았기에 놀이하듯 시집을 야금야금 읽어나가는 맛에 뜸하게라도 시집을 놓지 않았다.

어느 곳을 펼쳐도 내 이야기가 되고, 또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시집'만이 가진 매력이다.

"홀로서기" 서정윤 시인이 손수 고른 따스한 시들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서정윤의 홀로서기의 일부다. 서정윤의 '홀로서기'는 내 고교시절의 내 정서의 일부였다. 그의 시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익히고 그런 사랑을 하리라며, 주문처럼 암송하며 다녔었다. 홀로서기 이후 그를 잊었던 지라 신간에서 만난 그의 책이 무척 반가웠다.

그의 시집이 아니었지만, 그가 고른 '사랑'에 관한 따사한 시선, 그리고 시에 대한 서정윤의 단상을 볼 수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다.

곳곳에 서정윤의 시도 만날 수 있다.

시집제목은 강제윤 시인의 동명 시 제목을 차용했다.

 

먼 옛날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

보면 볼수록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삽화처럼 들어간 신철균 사진작가의 사진들이다.

어쩌면, '견딜 수 없는 사랑'을 하기에 이미 불꽃마저 꺼져버린 나이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자꾸만 사진에 눈길이 간다.

사진작가에 대한 짧은 약력 외에 아무런 정보를 알 수 없다.

60~70년대 사진쯤 되었을까.

5남매는 기본이었던 시절, 언니, 오빠가 막내동생의 보모겸 부모가 되었어 놀이처럼 놀고 있다.

상중에 아이를 보는 달랑단발의 언니, 초가집 아래 '죽음'에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남매의 모습이 의연해 보인다.

능숙하게 막내를 들쳐업었는데 아래동생은 배고프다고 칭얼되고 그 사이 다른 동생은 흙을 파먹는다.

난처하거나 짜증을 내기는 커녕 나무처럼 굳건히 선 살림밑천 맡누나다.

추운 겨울 방울 털모자에 시소가 놀이터의 전부였던 시절

기차길 선로따라 시래기를 주으러 가는 누나와 따라오지 말라는 데도

쫄랑쫄랑 아빠 장화신고 쫓아가는 까까머리 남동생

엄마따라 간 빨래터인지 논두렁인지 모를 곳에서 빨래 놀이를 하는 아장아장 아이

엄마가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러 나간 사이

골목길 또래 친구 셋이 모여 속닥속닥 까르르 웃어 댄다.

 

책으로라도 소장해야 할 그 시절, 오남매

사진 속 이야기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귀소본능은 아닐터인데..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힐링되는 느낌이다.

옛 것에 대한 아련함, 서로 돌보고 키웠던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움

그 막내가 바로 나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사진 속 아이들이 행복해 보여서 보는 이도 행복하다.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묶었으면 하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시는 시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에게 선물도 가능하겠다.

특히, 형제많았던 집안에 '막내인 너를 업어 키웠다'고 말하는 언니, 누나가 있다면 정말 소중한 선물이 되겠다.

시집 한권을 통해 우린 시간을 거슬러 유년의 물가에 이르러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그 시절, 까까머리 오빠와 단발머리 언니, 그리고 아장거리던 어린 나를 만날런지도 모른다.

감히, 소장해야할 사진첩 시집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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