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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공부심리를 이해하라 - 공부, 마음이 열려야 머리도 열린다
유성오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0년 3월
평점 :
철학을 공부하고 윤리학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쓴 책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생생한 심리에 대해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잘되라고 했던 충고가 잔소리로 밖에 들릴 수 없었던 이유들을 이제야 깨달은 느낌입니다.
아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수도 없이 인격을 깍아내리고 "너는 왜 자꾸 그러니?" 무심코 했던 말들이 아이의 무의식으로 흘러들어가 자꾸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는 무서운 사실도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진리인것 같습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도요.
이제는 문제상황이나 실수를 했을때 다음에 또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머리 맞대고 의논해야 겠습니다. "으이구 너는 안돼~" 이러지 말구요..
구구 절절 나와 아이의 행동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아이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한 심리서라기 보다는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지침서 입니다.
문장도 편집도 쉽게 읽히게 되어있어 금방 술술 보았지만, 내용은 두구두구 되새김질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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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공부를 방해하는 부정적 자기 인식>
사실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지능이 아니라 '나는 안 돼'라는 정서적 거부감입니다. 공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차피 안 돼'라는 본능적 거부감과 함께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빠져드는 아이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선생이 아무리 쉽게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이미 공부에 대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가르침의 기법이 무슨 큰 힘을 내겠습니까?
~하지만 '너는 안 돼'라는 사람들의 평가에 익숙한 아이의 마음은 '나는 할 수 있어, 하고 싶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쉽게 돌아서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비난과 평가를 피하기 위해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마련입니다. 그래야만 '안 해서 그런 거야'라는 한 가닥 변명거리라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p.21
아이는 부모의 인식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향해 '너는 애가 늘 그 모양이니?하는 식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자신이 바보고 멍청이라는 부모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아이란 존재는 절대적으로 부모의 견해에 반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물론 나이가 들어 청소년기에 이르면 반항과 분노로 대체하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렇듯 아이는 부모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구박하는 만큼 아이는 공부를 더 못하게 됩니다. 공부 못한다는 부모의 구박(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는 철저히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능력은 자존감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자존감은 어린시절 부모의 인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부모가 아이를 인정해줄때 아이는 무언가를 시도해보려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아이의 실패에(성적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에)대한 부모의 경멸과 구박은, 아이에게 일종의 낙인이 되어 더 이상 무엇을 시도하려는 에너지마저 고갈시키고 맙니다. 결국 공부 좀 잘하라는 부모의 윽박지르기는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는 셈이지요.
'넌 이것도 못하냐!'는 눈길과 암시는 아이를 점점 더 공부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맙니다. 따라서 부모가 취해야 할 우선적 태도는 아이를 향한 감정적 판단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처음인 듯이 대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공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아이에게 '바로 어제 공부한 건데 모르겠어?'와 같은 말이나 눈길은 정말이지 치명적입니다.
p.40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미 아이 자신이 내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이룩한 결과에 대해 부모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가 아이에게는 중요합니다. 시원찮은 성적 때문에 부모에게 혼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든다는 사실이 아이는 두려운 것입니다.
혼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끝나지만 아이를 향해 갖고 있는 평가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부모가 더 이상 아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다는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이는 부모의 인정을 얻고 부모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절망감에 빠지면서 빠른 속도로 자신감을 잃아가고 맙니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 힘듭니다.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부모의 꾸중은 절망과 분노를 생산해내게 하는 독약이 되고 맙니다.
성적이 안 좋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평가'입니다.
~성적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적이 안좋다고 말하는 순간, 평가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평가는 짐이 되어 아이에게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을 갖ㄱ 하고 나아가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빼앗아버립니다.
결코 아이의 성적이 나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되도록 칭찬을 해주십시오. 도저히 칭찬할 수준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이와 함께 고민하십시오. 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아이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인정해주고 가르치면 됩니다.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정말 처음 가르치는 내용인 것처럼 계속 되풀이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 마음속의 커다란 벽, 공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없앨 수 있습니다.
<<공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지능이 아닙니다. '나는 해도 안 돼'라고 믿고 있는 아이의 마음입니다. 아이의 마음이 거부하고 있는 이상 아이의 머리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열어야 할 것은 아이의 머리가 아니라 공부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입니다.>>
p.109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특히 꾸중할 때)는 일관성 있는 태도(기준)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자기를 어떤 식으로 대할지(심하게 꾸중할지 아닐지)를 아이가 스스로 내다볼 수 있개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대응방식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도 미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도을 하고 난 다음 부모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대할 것임을 알기에 정직하게 대처할 용기도 생기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아이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행동 수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비록 행동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이 정도 혼이 날 것이다'라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일로 부모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든다는 불안감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만(짐작하는 수준의 꾸중) 지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짐작하고 있는 정도의 꾸중은 감수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이는 정직하게 부모 앞에서 진실을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128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은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선택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꾸 자신은 옳고 자녀들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굴복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보니 자녀를 향한 분노와 비난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핵심은 옳고 그림이 아니라 '선택'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는 실제로 살아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데 말입니다. 부모의 선택이 아무리 옳고 좋아 보여도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가 내게 강요할 때 나는 어떠한가'를 스스로 떠올려보십시오.
p.179
~결국 내 아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꼴등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 아이가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바람은, 결국 다른 아이가 못해줘야 한다는 바람과 똑같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학교 성적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적표는 말 그래도 성적표일 따름입니다. 무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다른 욕구를 참아내며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정도를 보여주는 표인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 다닐 때 점수 따기를(암기력 훈련) 위해 열심히 노력해본 경험이 있으니 사회에 나가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치를 보여주는 표란 것이지요. 따라서 한 사람의 전체적인 능력을 모두 보여주는 표는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열심히 노력해보았다는 사실 아닐까요? 그것이 교과서외우기든, 운동이든, 악기 연주든, 기계 조작이든, 놀기든, 소설 쓰기든, 영화 만들기든,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면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굳이 성적표에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반드시 교과서 외우기(좋은 성적 얻기)만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내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교과서 외우기만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아이의 자신감과 잠재적 능력을 억누리고 무시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고 맙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행복하지 못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부모가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이의 성적이 아닙니다. 아이가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참을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를 평생 먹여살려 줄 진정한 공부요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p.206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흥미와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평가 점수를 들이대고 등수를 매기고 윽박지르면 학생들이 자극을 받아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학업 성취도를 이룰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 당국자들은 이러한 우리의 교육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경쟁은 교육에 무척 해롭다, 학교는 학생들이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협동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운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지나친 경쟁이 빚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핀란드 교육 당국자들의 생각입니다.~경쟁에 대한 부담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떨어뜨립니다. 깊은 생각을 할 여유가 사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협동하는 힘을 기를 기회를 빼앗아버립니다. 또 경쟁에서 뒤처진 학생은 지나치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공부는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공부는 즐거운 것입니다. 모르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 그 순간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경쟁'이 끼어들면 아이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공부는 고통이 되고 맙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계속 아이들을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야 할까요?
과연 경쟁이 아이들의 실력을 높여준다고 계속 믿어야 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