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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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이들이 어릴 때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그것을 통한 타인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어울림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요?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얻을 수 없을 테고,

사회는 분열로 치달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소중한 인문학강의를 많이 듣고, 읽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거나, 소중한 친구를 따돌리고 학대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읽으면서 자꾸 서글픈 우리의 교육을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아이에게 이런 강의를 찾아가며 듣게 해주고 싶네요.

<길담서원>마음에 꼬옥 담아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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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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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일호는 이유없는 아빠의 가출로 대대로 이발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졸지에 결혼식도 하지 못하고 엄마가 되버린 공인중개사 엄마와 사는 17살 고등학생입니다.

17살다운 반항심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보다 잘 억제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처럼 길러보고 싶은 머리털을 늘 순순히 할아버지 손에 맡길 정도로요.

그러나 짧은 머리덕에 모범생이란 오해(?)까지 받던 일호가 체육선생의 도발적행동(머리가 긴 학생의 머리에 라이터를 들이대는....)으로 지금까지 억눌렀던 울분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일호의 긴 투쟁이 시작됩니다. 자신과 친구들의 털에 대한 권리를 찾아오기 위한...

그러던 중에 청소년기에 가출했던 독특하고, 철없고, 논리적이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아빠가 돌아오면서 일호의 싸움은 유리해집니다.

거기다 아빠를 용서한 할아버지까지 일호의 편이 되고 소설은 정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만약 가족이 일호의 편이 되주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당연히 일호의 패배로 끝났을 겁니다.

우리 주위에 일호같은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아직 일상생활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갈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고 있는건 아닐까요?

이길수 없는 어른과의 싸움의 계속된 패배때문에요.

슬픈 현실입니다. 그리나 꼭 극복해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해 정의로운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교육을 통해 불의에 순응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일호는 교육이 아닌 무엇에 의해 정의로운 인간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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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쪽
~이기고도 질 수 밖에 없는 게임. 어른들과의 게임은 그렇다. 이겼다 싶어 득의만면할 때 어른들은

손을 들어 주는 척하면서 슬쩍 패를 뒤집어 놓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속임수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야바위꾼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16쪽
"네 글을 보고 사실 놀랐다. 네 나이에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선생님 무서워 꿈도 못 꿨겠지. 아무튼 역시 이발사 손자답게 머리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더라."
나는 아버지 말에 푹 웃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오늘처럼 나를 대신해 싸워 주지는 않더라도 끝까지 나를 믿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시작한 싸움은 내가 끝내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동지를 얻은 것이 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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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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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 하면 머리를 내두르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보고 다시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즐겁게요.

 하고 싶지 않은 공부에 질려 공부를 멀리 하게 만드는 게 현 교육 풍토입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깨우치게 해주면 그 다음은 저절로 굴러갈텐데...

 동기부여를 생략한 채 결과만 강요하는 공부는 되려 점점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만 줄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배워나간다는 즐거움을 먼저 알려주는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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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사교육은 아무리 날고긴다 한들 학교식 공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의 이념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학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인 것. 더 끔직한 건 학교가 늘어날수록 이런 양상은 한층 심화될 뿐이라고 한다. 즉,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관을 늘리고,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학교는 더더욱 공부에 대한 이미지와 표상들을 몽땅 흡인해버린다. 그래서 국가의 형태나 경제적 수준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p.35 <거짓말 하나-공부에는 때가 있다>
~동일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몰아넣고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모든 차이와 이질성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주 평균적이고 상식적인 존재, 곧 국민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학교에 주어진 소명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 동안 엇비슷한 연령대 외에는 서로 뒤섞일 만한 공간 자체를 빼앗겨버린다.
~ 이 연령별 균질화가 만들어낸 가장 심각한 망상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어!'라든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 '젊었을 때 공부 못한 게 한이야', '과정 끝났으니 이제 마음껏 놀아라' 등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들이 다 거기서 유래한다. 즉, 젊은 시절 가정 형편이나 건강 등의 이유로 공부를 못 하게 되면 한평생 공부는 다시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혹은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p.105 <독서로 인생역전! - 호모 부커스>
~학교가 퍼뜨린 가장 질 나쁜 거짓말은 공부로부터 독서를 분리시켰다는 사실에 있다."책 보지 말고 공부해!" 라는 상토어가 잘 말해주듯, 학교에서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공교육에서 독서는 오직 논술을 위한 보조수단이고, 대안교육에선 취미활동이다. 대학에선? 아예 관심 밖이다. 이건 달리 말하면, 학교를 아무리 다닌다 한들 독서하는 힘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 말이다.

 

p.135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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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
애드 디 앤절로 지음, 차미경.송경진 옮김 / 일월서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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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공공도서관이 자리를 잡은 것은 1900년대로 100여년의 역사를 갖는다. 아직은 복지국가에 비해 도서관 수도, 장서량도, 사서 수도 많이 뒤쳐진다. 그나마 점차 도서관이라는 이름보다 학습관, 정보센터 등의 이름으로 우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공공도관의 임무를 민주주의와 시민교육, 그리고 공익으로 본다.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에 의해 오락의 기능으로 치우치면서 이 가치들과 함께 사서와 도서관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지기로서의 사서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대중문화에 휘둘려 도서관은 소비자 경제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역할이 없어진 사서는 경영관리나 공공계획 쪽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 공공도서관 사서로서 10여년간 근무한)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보다 세월을 아우르는 장서의 수집과 그 자료를 이용시키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질의 도서를 모으기 위한 수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한 장서의 뒷받침 하에 교육, 문화 등의 기능이 수반되어야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의 창출은 개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의 깊이 있는 공부 없이는 세대를 뛰어넘는 지식이 나올 수 없다. 또한 그런 세기의 지식은 독서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논어에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라 했다. 옛것을 익히지 않고는 새것이 나올 수 없다. 도서관의 교육, 문화프로그램은 함께 받는 자극이다. 여기에서 받은 자극을 내면화 하고 심도있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독서이다.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도 다양한 독서를 통한 비교와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정책을 보면 지나치게 교육적 측면을 강조한다. 현 사회의 문제를 도서관(기타 유사 기관...)에 기대어 풀어나가고자 한다. 좀 더 양질의 독서와 독서를 위한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이 생각은 너무 안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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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우리가 직업의 뿌리에 대한 이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꼭 필요한 공공재와 교육의 가치를 정부가 평하절하하고 억압하는 것도 쉬워진다.


p.29
어떻게 우리는 도서관에 사서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공공도서관'에서 '공공'을 떼어내버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런 일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의 광범위한 경향에 대한 탐색과 더불어 도서관과 사서직의 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무엇ㅅ이 공공도서관을 시장의 다른 사기업들과 구분 짓는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인 것인가 하는 것과 공공도서관의 임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오락과 교육, 욕망과 교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교육 그리고 공익이라는 것은 공공도서관을 지탱하는 세 기둥이라는 것이며,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는 이 세가지 가치와 더불어 이를 위한 기관인 공공도서관을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p.39
공익이라는 개념은 공공도서관의 개념에 필수적이다. 18세기에 이미 민주주의란 곧 공익으로 믿어졌고, 교육은 그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근대 공공도서관들은 본래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을 진작시킴으로써 공익에 이비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p.76
교육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권위를 전제로 한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을 교화시키는 것이다. 반면 오락의 목적은 고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오락은 고객이 늘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 사이의 어떠한 구별도 전제하지 않는다. 오락은 일종의 소비지상주의다.

p.199- <포스트모던 소비자 자본주의와 공공도서관>
오늘날에는 서평이나 판단기준에 근거해서 책을 선별하는 경향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사서들의 일상업무는 사서들의 독서시간을 줄이도록 재편되어왔다. 점점 더 많은 책들이 수요가 높다거나 판매고가 높게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선정된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결국 사서들은 더 이상 장서에 포함시킬 도서를 선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경향의 끝에는 기업형 체인서점의 도서자동주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단지 대출이나 신청된 수에 다라서 필요한 책을 주문하는 자동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트웨첼식으로 말하자면, 윌리엄 프레더릭 풀이라는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수석 사제가 곧 컴퓨터 스크린 위에 깜박이는 작은 숫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기술자가 된다는 것이다. " 다니엘 스틸과 스티븐 킹의 책들을 좀 더 가져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도서선정의 원칙은 아주 간단해졌다. "달라는 걸 줘벼려"라는 것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라는 것이다. 비위를 맞춰 주고 떠받들어주되 교육하려 들지는 말라는 것이다. 판단기준의 결여는 포트스모던 소비자 문화의 중심에 도사린 허무주의를 입증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문지기로서의 역할이 사라지자 대중문화가 고급문화를 압도했고, 오락이 교육을 대체했으며 이미지가 활자를 대신했다. 도서관은 이제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 쓰인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거대한 비디오 컬렉션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와 활자는 모두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도서관의 업무는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단어는 이미지보다 더 잘 추상적인 사상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이미지는 단어보다는 훨신 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재미란 단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지식이 아닌 정보를 소비할 뿐이다. 도서관이 이미지의 조달자가 되는 한 도서관은 소비자 경제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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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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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에 가까운 거장 2명이 쏟아내는 혜박함의 향연집이라고나 할까요?
광대한 知의 우주에 발가락 끝을 잠깐 넣었다 뺀 느낌입니다. 
하나를 일평생 추구하면 이런 경지에 이르겠지요.
아마 시간만 있으면 책 몆십권 정도는 뚝딱 만들어 낼 분위기입니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공감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면 글을 써라"였습니다. 불태워지지 않을 글을...
우리 아이들에게라도 전해질 수 있는 글을 끊임없이 써야 겠습니다.
그마저도 한세대 후엔 망각의 심연으로 가라앉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의 죽음 후에 나의 글을 본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혜안과 지혜를 지녔고,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혁명적이었더라고 기록되지 않았다면 없었던것과 마찬가지 니까요.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그들의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겠죠.
기록의 중요성, 책의 절대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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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카리에르)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책은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필요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어요.

 

p.178
카리에르) 마치 우리가 통과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가 행해질 때마다 책은 변화되는 법이죠. 위대한 책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자라나고 늙어가되,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시간은 책을 비옥하게 만들고 변화시킵니다. 반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책들은 역사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 사라져 버리죠.

 

p.206
카리에르) ~신앙이란 언제나 지식보다 강한 것이었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통탄하기도 하지만,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삐뚤어진 가르침들이 세상 만물의 흐름을 뒤엎는다고 말한느 것은 지나친 걱정이에요. 아닙니다. 세상 만물은 항상 그것 자체일 뿐입니다.


p.260
카리에르) ~우리의 기억에서 나가게 되는 이 누군가, 우리의 역사책들과 우리의 대화들과 우리의 기념 행위들에서 조용히 추방되는 이 누군가는 결국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처럼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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