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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책은 결론을 미리 이야기 하다가는 돌 세례를 맞을 정도로 크나큰 반전이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영국소설 <핑거스미스>가 왠지 떠오를 정도로요.
그때도 마지막에 쿠쿵!! 했거든요.
연쇄살인범이 70살이 되어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점차 잊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심한 가정폭력에 의해 살인마가 된 주인공!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결말은 생각보다도 더 끔찍했습니다.
치매 환자가 되어 자신이 한 살인의 기억을 잊고,
태초의 망각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축복일까요? 불행일까요?
길지 않은 분량에 짧막짧막한 단문들로 자신을 잊어가는 살인자의 감정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는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과중한 책임인지를 상기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부모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아참 마지막 장면에서는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떠오르네요.
28쪽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관하지 않는다.
87쪽 ~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악마적 자아의 자율성을 제로로 수렴시키는 세계, 내게는 그곳이 감옥이고 징벌방이었다. 내가 아무나 죽여 파묻을 수 없는 곳, 감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할 곳, 내 육체와 정신이 철저하게 파괴될 곳. 내 자아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 곳.
94쪽 나는 조용한 세상이 좋다.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너무 많은 표지판, 간판,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무섭다.
143쪽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가.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145쪽 ~ 하루 이틀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영원이 지난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오전인지 오후인지도 모르겠다. 이 생인지 저 생인지도 분명치 않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자꾸만 내게 여러 이름을 댄다. 이제 그 이름들은 내게 어떤 심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사물 이름과 감정을 잇는 그 무언가가 파괴되었다. 나는 거대한 우주의 한 점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48쪽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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