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 그저 살다보니 해직된 MBC기자, 어쩌다 보니 스피커 장인이 된 쿠르베 이야기
박성제 지음 / 푸른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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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엠비씨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부당해고를 당했다. (재처리도 안된다는 김재철사장 때 일이다,) 자, 기분이 어떨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계와 돈에 관한 공포와 압박은 어떻게 해결할까? 실직자라는 “낙오”의 이미지를 담은 주변의 시선은 또 어떡하나? 그런데, 불과 2년만에 스피커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스스로 수작업으로 명품 스피커를 만든다. 이런 뜬금없는 도약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런 이야기는 백수전성시대에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 아닐까?

<어쩌다보니,그러다보니>는 엠비씨 해직기자였던 저자가 직접 수제 스피커를 만드는 장인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김재철 사장 이야기와 1백70일간의 엠비씨파업, 저자가 겪은 기자생활의 내막도 덤으로 들어가 재미를 더한다. 언론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물론 가슴아프지만, 저자가 또 다른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부러움과 한숨이 섞여 나온다. 저자에게 그런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그 때까지 “쌓아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연희동 한쌤이 강의 중에 “40대에 굶어죽기 힘들다”라는 취지의 애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때까지 쌓아놓은 경력이나 여러 가지 유무형적 자산이 그 사람을 먹여살린다는 취지의 애기로 이해한다. 노조위원장이지만 한량기자였다는데 저자 역시 해고를 당하면서 완벽하게 망망대해로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일단 “복직”과 “해고무효”라는 것이 상당한 심리적 완충지가 되었을 것 같다. 실제 가능성여부는 차치하고 바라볼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직이라는 황망함을 가라앉히지 않았을까. 최승호, 이근행 같은 동료해직자의 존재와 노조의 지원도 도움이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내의 수입이 있었거나 노조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어서 생계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았을까. 골프를 즐기고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인 홈시어터 애호가였다니 지금 세상에서 한 끝자락 잡기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실직중 한 행동의 특징을 꼽으라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처음 서너달은 적당히 운동하고,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술 마시며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식탁을 만들어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공방으로 향해 난생 처음 목공기술을 배워 8일만에 식탁을 완성한다. 그리고, “감동이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아마 이 소감이 저자의 이후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취감을 쫓아 목공일을 점차 늘려가다니 작접 디자인을 하고 자신의 취미인 음악듣기와 목공을 결합시켜 자작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한다. 얼마나 성취감이 높았던지 <뉴스타파>의 합류제안과 연봉 2억(!)의 대기업 임원 취직제의를 거절한다. 이 대목이 가장 낯설게 느껴진다. 무려 2억이다! 내가 몇십년 일하면 그 정도 모을 수 있을까. 저자도 이 대목에서 “후회는 없다”며 자못 비장해지는데 나는 혼란스럽다. 당시 저자에게 목공일은 돈을 벌게 하는게 아니라 돈을 쓰게 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행복하게 살자”를 모토로 삼았다고 한다. 목공을 선택한 것은 두 대안 모두 행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실직 후 생계의 부담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이야기 내내 없다. 실직 중에도 아내는 와인 파티를 열고, 변호사 친구가 참석한다. 굶어본 적이 없어 당당한 건지, 아니 내가 실제로 굶어본 적은 있는 건지.

인상적인 것은 스피커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자가 여러 인맥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동호회 카페의 열혈회원이었다는데 “재능 기부”처럼 도움을 받아 스피커를 완성한다. 기자시절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후 그런 과정을 보고 있으면 “좋은게 좋은 것을 불러온다”는 어찌보면 씁쓸한 원칙이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어쩌다보니,그러다보니> 스피커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는 것인데-회사라기 보다는 1인기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와타나베 이타루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비슷한데가 많이 있는데 목공과 제빵이라는 “장인”이라는 개념이 들어갈 수 있는 “중간 규모”의 일을 택했다는 점, 이윤보다는 장인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일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히라카와 가쓰미가 말하는 “소상공인”의 개념에 가깝다. 그리고, 소비가 아니라 노동에서 이미 삶의 정체성과 의미, 재미를 찾았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소중하고 행복한 감정을 찾아가니 일로 발전하고 자신의 또다른 정체성을 찾는 과정.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뭐가 중요한 걸까? 돈? 그러면 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1년동안 아내에게 가져다 준 수입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윤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피커를 공급하는게 저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착취할 수 있는 회사의 사장도 아니다. (아까 말했듯 1인기업이다) 아마도 스피커를 만들고 살아온 과정 자체가 저자에게는 돈 못지 않는 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계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자살을 택했는데 어째서 이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만들 수 있었을까?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돈, 정말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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