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의 다윈 - 지적 설계 논쟁, 제2판
필립 E. 존슨 지음, 이승엽.이수현 옮김 / 까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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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면 결국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결이고 의미와 무의미의 대결처럼 보인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은 그걸 상징하는 도구다. 어디까지를 과학이라고 할 것인가? 저자는 과학이 자연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닫힌 경기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적설계같은 패러다임은 아예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으며, 이 경기장의 규칙이나 토대도 결국에 증거에 기반한 과학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의 신념 내지는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가장 맹공을 퍼붓는 부분은 종간의 도약을 설명하는 "대진화"다. "소진화"는 과학적 실험이라는 여러 기준을 통과하지만, 소진화의 축척이 "대진화"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왜 다윈이 중요한가>에서 셔머는 대진화는 소진화의 축적이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방식에 따라 결정되며 성선택이 작용한다고 반박한다. 저자의 논리는 과학이 가진 무기를 빼앗아 역공격하는 방식이다. 대진화를 증명하는 증거인 화석이 발견되지 않으며 오히려 화석은 갑작스러운 멸종과 종의 도약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셔머는 여기에서도 화석이 발견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하며 반박한다. 저자는 자연선택이론이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내용없는 공허한 이론이라고 한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는 이야기이고 이는 결과론을 둔 사후합리화이다. 하나의 증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과학자는 비과학적인 태도 중 증거의 확증편향을 들지만 저자는 이 확증편향을 무기로 진화론을 공격한다. 셔머는 여러가지 증거가 진화론으로 수렴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정답으로 정해놓고 증거를 해석한다고 반박한다. 다윈의 편을 들자면, 어차피 실험이 불가능한 진화의 문제같은 경우는 어느정도의 어드밴티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주론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뉴턴과 갈릴레오 이후 자연주의적 세계관이 성립되었고, 그 세계관에 부합하고 중요한 구성요소로 진화론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신이 없냐 있냐 수준의 문제인데 이게 내 생전에 결판이 나는 문제일까?  어차피 결판이 날 가능성이 없는 문제를 증거가 부족하다고 진화론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지적설계론과 동격으로 두는 것이 어쩌면 더 불공정한 것이지도 모른다. 무신론자들은  "의미"를 신이나 천국에서 찾지말고, 지상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신이 없다는 것이 해방을 줄까 무의미를 줄까?  역설처럼,-세계가 완벽하게 무의미하다면 극단적인 무의미에서 오히려 의미가 생성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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