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세이초, 반생의 기록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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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대가들의 성공스토리 뒤에는 대부분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고 말한게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였다. 과연,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데이브 힐튼의 2루타를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마루야마 겐지는 데뷔작이 아쿠타카와 상에 당선되며 무역상사의 고졸 신입사원에서 소설가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 나는 전부터 예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무언가 특별한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 때 마다 자문하곤 했다. "나에게 정말 재능이 있는가?" 오래전에 구로와사 기요시가 내한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질 때(진행을 영화평론가 김성욱이 했다)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구로사와 감독의 답인 즉, 매 장면을 찍을 때 마다 나 천재 아냐 하는 감탄과 나에겐 재능이 없다는 자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답은 궤도를 이탈해서 다른 길을 가고 싶어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진 않았다. 다른 관객이 비슷한 질문을 또 했고, 구로사와 감독이 왜 이렇게 짖궃은 관객이 많냐고 헛웃음을 짓던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실격 사유라는 것을.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고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조차 묻지 않는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숨을 쉬듯이, 숨쉬는 것 말고는 생존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이다. 

42살에 소설가로 데뷔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지금이야 42살이라고 해도 예전보다는 이펙트가 덜한 것 같은데, 끈 없고 빽 없는 마루야마 겐지조차 20대에 최연소로 데뷔한 후에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전쟁 전후의 평범하고 가난한데다 아내와 자식까지 건사하던 하급 신문사 임시직이 42살에 소설가로 데뷔한다는게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굳이 나누는 치사한 짓은 말자. 자서전에서 자신의 데뷔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하루키나 겐지나 비슷한데 나같은 쫄보는 그런 이야기에 어떤 힌트가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 부분을 진짜 대충 넘어간다. 마루야먀 겐지 역시 자신이 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긴 했지만 뭐랄까, 서울대 가기 싫어서 공부했는데 하버드 합격했어요 하는 느낌이 있다. 반면 마쓰모토의 이 자전적 이야기에는 그런 느낌조차 없다. 아마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의 삶이 빈곤과 궁색 그 자체였기 때문인지, 고등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 평생을 차별과 외부인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허세아닌 허세조차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일본의 전후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잃어버린 샤프를 한시간 동안 찾는 장면나 장사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빗자루 장사를 시작하는 장면은 애잔하면서도 참담하다. 그렇게 그 시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친 것이다. 뭐 지금도 다를 바 없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근데 인간의 조건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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