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아서 고요하게 죽음으로 간 의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끝까지 내몰았을까

무엇이 그를 일주일에 한 번 귀가하도록 했을까

무엇이 그의 등에 책임과 존경을 계속 쌓이게 만들었을까

그건 아마도 신념이라는 기이한 무형태의 수용이 그를 한없이 메시아의 모습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가족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도 버릴 정도로 신념이 그의 모든 가치관, 그 위에 있었다

국정감사로 국회에서 한 여성의원의 한심하다는 질책에 답을 하던 그가 생각난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주위에서는 사실 잘 볼 수는 없다

인구 몇 명당 몇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있고 신념을 위해 움직이는 것일까

천 명당 한 명? 만 명당 한 명? 십만 명당 한 명? 아무래도 그는 소수의 편에서 다수의 사회 부적응자들을 살리려고 했었다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그는 늙어 죽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됐다

신념은 그에게 나이 들어간다는 희귀한 순간을 느낄 새도 없게 만들었다

신념은 그의 삶을 싹둑 잘라 버리고 말았다

화도 질책도 없이 하루에 스무 건 이상의 업무를 봤던 그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메시아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죽음 직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서 다 나눠줘 버리고 그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따뜻한 날에 생명을 다 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조금씩 뜯겨 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받은 이들이 살아난 것에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모든 자산인 것처럼

 

축 늘어진 그림자를 질질 끌며 질기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사는 동안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음도 의미 없을 것이다

그는 비록 일찍 생명이 다 했지만 짧은 그의 생은 많은 이들의 행복으로 비축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와는 아무 상관은 없지만 그의 죽음은 영웅이나 신화적 존재가 아닌 한 인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진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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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리 토마토와 딸기는 말이야

니나가와 미카의 컬러를 먹는 기분이 들어

무척 퇴폐적인데 산뜻하면서 아름답지

니나가와 미카의 컬러가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밋밋함이 오종종한 세계에 마법이 펼쳐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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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빛 감동

짧은 만남

경쾌한 칼칼함

그리고

긴 여운

 

청국장을 모르는 것은

세상을 모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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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만 꼼지락거리는데 근래에는 소설책 이외의 책을 많이 펼쳐보는 것 같다. ‘인체 재활용’이라는 인문학? 책을 보고 난 후에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시체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리차드 도킨슨인가 그 사람의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 난 후에는 다윈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올리버 색스는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강으로 갔다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가버린 곤충학자 마에노의 메뚜기 연구기?는 퐁당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그의 글에 가득한 유머는 요네하라 마리의 유쾌한 지식을 읽는 것 같다. 메뚜기의 세계가 이리도 넓고 크고 묘하고 요상하고 기괴하고 신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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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녀의 세계는 무척 순수한 소녀들을 표현하기 위해 풋풋하고 싱그러운 사과 같은 색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죽 이어진다. 이런 필름보다 더 필름스러운 디지털 색감은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잘 드러났다. 쓸데없는 얘기지만 나는 하나와 엘리스를 40번은 넘게 봤다. 그 영화는 처음보다 두 번째 볼 때 더 많은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나타나고, 세 번째 볼 때는 더더 많은 이야기, 네 번째 더더더 많은 이야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하고 기이한 영화였다. 고작 두 시간짜리 영화였는데 하나와 아리스와 마크의 이야기가 2년 동안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소녀의 세계는 여고생과 여고생의 사랑에 관한, 비밀스러운 소녀가 소녀에 관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궁금하고 씩씩하고 흥미 몬스터 고등학교 1학년 선화는 사진부인데 연극반의 줄리엣 역을 맡으면서, 선화를 발탁한 선배 수연과 전교생이 좋아하고 선물을 갖다 바치는, 밝게 웃는데 쓸쓸하게 보이며 보이시한 매력을 지닌 하남과 가까워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고생이 멋있는 선배 여고생을 동경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고생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여고생은 남고생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이유 중에는 주인공 선화가 사진부이기에 소녀의 감성으로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사진부였기에 영화 속 고등학생이 사진부여서 사진을 담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을 꺼집어내보면 나는 후배들을 구타해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후배들이 다른 선배들보다 나를 많이 따랐던 것 같다. 때리지 않았던 이유는 때려봐야 아프지 않을 것이기에 타격을 주지 못하면 나만 쪽팔리니까 그냥 그랬던 것뿐이었다

 

가끔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름을 담고, 이건 말이야 미국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라는 사진가가 있는데 그 사람의 사진 중에 구름 시리즈가 있어, 스티글리츠는 구름을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사진을 담아내며 나불나불, 그 사람의 부인이 조지아 오키프야, 우리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처럼 사진을 담으려 해야 해, 같은 말도 스스럼없이 했었다

 

군대에서도 후배들의 사진을 잔뜩 찍어줬다. 나중에 엄마 면회 오면 말이야, 멋진 사진을 선물로 드려라, 하고 하면서 사진을 잔뜩, 가득 찍어줬었다. 그래서 그런지 짝대기 네 개일 때 야간 근무를 하고 들어오면 관물함에 컵라면이나 음료수가 몇 개씩 들어있었던 적이 있었다

 

야, 이거 누가 넣어놨어?라고 말하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관등 성병을 대며 누구누구입니다, 제가 넣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곧 제대하니까 너가 배고프니까 너 먹어라. 이런 말이 쫄다구들에게는 멋있게 들렸을까. 나는 피엑스 병을 몇 개월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물건 넣어주는, 농심, 오뚜기, 해태 물건을 넣어주는 형들과 친해서 주문한 물건을 제외하고 술도 몇 병 받았다

 

술은 냉장고 저 음료 끝에 눕혀 놓고 힘들어하는 쫄다구를 불러 라면에 술도 먹이고 야근 근무도 빼주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참 재미있었던 것은 쫄다구 중에 몇몇은 휴가를 받았는데 나와 휴가가 겹치면 며칠은 우리 집에서 보내기도 했다

 

마산에 사는 쫄다구가 우리 집에서 며칠같이 있었는데 이 녀석은 마산의 어느 호텔의 나이트클럽 지킴이를 하다가 군대를 왔다. 덩치가 산만했고 정말 거친 녀석이었는데 겨울에 우리 집으로 와서 며칠 있겠다고 해서 같이 있었는데 군복을 벗기고 내가 아끼는 가죽점퍼를 입혀서 같이 다녔는데 술을 한잔 마시고 집으로 오니 가죽점퍼의 옆구리가 다 터졌었다

 

소녀의 세계가 소년의 세계보다는 확실하게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렇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오늘 남고생들과의 만남이(주기적으로) 있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참 단순하다. 금방 놀라고 소리 크고 아이 같은데 이런 모습이 어른까지 죽 이어진다. 이야기하면서 적절한 욕과 시강, 현타 같은 말이 많아서 나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소녀의 세계를 보면 내가 사진부였던 고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소년이었던 나는 묘하게도 후배 소년들이 잘 해줬던 것 같다. 암실에서 늘 장국영의 음악을 틀어놓고 사진에 대해서 주절주절 말하거나, 파노라마를 찍는 이야기를 하거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많이도 혼났던, 그런 소년의 세계, 영화 소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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