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우러러 보는 대학에 왔지만 현실적응에 실패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병태는 사기꾼 여자 때문에 경찰서에 잡히고 거기서 거지왕초 민우를 만나서 현실 도피를 한다. 민우는 갈 곳 없는 병태를 단골 사창가에 데리고 가고 거기서 말 못 하는 벙어리 춘자를 만난다.

사창가 남자들에게 매일 얻어맞는 춘자에게 연민을 느낀 병태는 자신의 시계를 주고 춘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춘자의 얼굴을 감싸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사랑에 빠진 병태는 춘자를 사창가에서 빼내기로 한다.

민우는 병태의 이 계획에 가담하기 싫다. 그저 평소처럼 거리를 떠 돌며 사람들에게 조금씩 돈을 얻어 사는 게 편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춘자를 사창가에서 빼난다. 사창가 포주 이대근이 춘자를 덮치려고 할 때 사창가에 난리를 피우고 춘자를 데리고 나온다.

세 사람의 목적지는 춘자의 고향인 우도. 겨울은 혹독하기만 하고 옷도 얇도 돈도 없는 세 사람은 거기까지 과연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게다가 사창가의 포주들인 이대근, 남포동이 세 사람을 쫓는다.

배창호 감독은 아마도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고래사냥은 삼포 가는 길을 보는 것처럼 시리고 아프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고향을 찾아가는 로비무비 형식이다.

매서운 설원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여정은 죽기보다 힘들다. 세 명의 인류애가 아니면 그 속을 돌파할 수 없다. 이런 구조는 이만희의 삼포 가는 길과 배창호의 고래사냥은 비슷하다. 영화 곳곳에 위트 가득한 장면이 있다.

버스가 검문당할 때 피해 가는 방법이나 배고픔을 이겨내는 기술이 재미있다. 이미숙과 김수철이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데 이 둘은 스테레오 타입이다. 만약 둘만 나왔지만 너무 진지해서 재미가 없을 것이다.

민우 역의 안성기가 극을 거의 끌어간다. 거지 치고 잘 생겼고 상황판단 능력이 좋고, 재빠르고 운동에 싸움도 잘한다. 위기에서 두 사람을 구해내는 건 거지 민우 역의 안성기다. 민우는 이 길에 따라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아들과 딸처럼 두 사람을 서포트해 주는 역을 멋지게 해낸다.

요즘 여기저기 자주 나오는 영화 평론가가 안성기가 연기가 잘하는 배우인가 하며 의문을 자주 말하는데 고래사냥에서 안성기는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다. 연기를 잘하기에 이런 배역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음악을 김수철이 한 만큼 김수철의 노래가 영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데 너무 좋다. 세 사람은 쫓아오는 사창가 포주들을 피해 무사히 도착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영화 속에 민우가 병태를 향해 멋진 대사를 한다.

[넌 이 벙어리한테 사랑을 배워야 돼. 얜 니 아픈 몸을 구하려고 자기 몸을 버리려고 했어. 바로 그게 사랑인 거야. 너처럼 벙어리를 남한테 뺏길까 봐 사람을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질투일 뿐이지]

벙어리로 나오는 이미숙은 대사 한 마디 없다가 반전이 있다. 이미숙의 20대 얼굴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는데 아리무라 카스미의 얼굴을 많이 닮았다. 통통하면서 웃을 때 너무 예쁜 얼굴이다.

지금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안성기 배우를 비롯해서 배우들의 젊은 시절과 80년대 날 것의 배경을 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영화자체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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