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캔 로지 감독은 거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현지의 노동자들과 난민의 아픔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는데 치우침이 없다. 캔 로지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좋아해서 외면하고 싶다.
사실 캔 로지 감독의 영화는 보기 싫다. 보면 빠져들어 아프고 슬프다. 그러다가 따뜻해져 온다. 따뜻해져 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아프거나 슬픈 영화는 외면하고 싶은데 이 할아버지 감독의 영화는 보면 빠져든단 말이다.
이 영화는 소외된 약자들에게 힘을 과시하기보다 그들과 연대하여 단단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한 동에도 난민들이 산다. 정착한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지 한국인들에게 뭔가 미안한 구석이 있는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다. 아침에 나오면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쳐야 하는데 거기서 난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있다가 나를 보면 약간 피하는 눈치다.
나는 어색하게 약간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재빠르게 지나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귀여운 꼬마가 내 앞으로 와서 인사를 꾸벅했다. 나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 아무것도 아니다.
난민이 정착하기 전에는 여러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아파트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편견 때문에 난민을 꺼리는 것이다. 뭔가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있고 누군가 그걸 자꾸 부추긴다.
그러나 아직 여기서 난민의 사건사고 소식이 난 적은 없다. 나쁜 짓은 온통 한국인들이 한국인에게 하는 소식뿐이다. 폭행, 폭언, 사기 등 전부 한국인이 한국인 또는 외국인에게 한다.
이 영화는 빌리 엘리엣처럼 정부도 손을 놓아 망해버린 영국의 북동부 한 시골마을에 남아있는 노동자와 이주 난민들이 부딪치다가 올드 오크라는 오래된 펍을 운영하는 주인공 티제이와 난민 여성 야라가 편견이 심한 마을 사람들과 난민의 거리를 좁히려 드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이고 삶이 막막하다. 난민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꼬이고 꼬인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캔 로지 감독의 마법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참 좋은 대사가 있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