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의 놀라운 연출력은 이미 데뷔작인 ‘미행’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영화 속의 인물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고 만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옭아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터진 핏줄처럼 여러 갈래로 생각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마지막까지 가서도 영화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행을 먼저 봤다면 아마도 놀란은 소포모어 증후군에 그대로 걸려버려 이후 작품은 망작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을 확 깨버렸다.

추리물이군, 하다가 어? 다큐멘터리군. 하지만 또 아니다. 놀란은 이 데뷔작을 만들면서 이미 메멘토를 머릿속에서 그려놓았을 것이다. 주인공 ‘빌’이외에 ‘콥’이라는 등장인물은 맥거핀일까. 콥은 빌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페티시라든가 모성애를 건드린다.

일기가 나온다. 일기란 개인적이고 치부이며 타인에게 금기되는 것이다. 그 일기를 사람들은 사진과 함께 상자에 넣어 둔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누군가 내 사진을 보며 예쁘다고 하면 기쁘다. 그런 사진과 일기를 같이 넣어 둔 것은 타인이 몰래 내 금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배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인공 빌은 사람에게 모멸을 느끼고, 자신에게서는 자멸을 느낀다. 영화는 마지막에 가면 어? 하면서 뒤통수를 맞았던 그 동안의 영화보다 더 뇌리를 멍하게 만든다. 어떠한 특수기법도 없고 오로지 이야기로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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