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임 아나운서는 아직 처녀인 자신이 토요일 새벽에 나와서 이렇게 방송을 하고 있으면 우울하다고 한다. 그 우울을 좀 잊어버리기 위해 지금 옆에는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나와 있다고 소개한다. 이 시간에 이렇게 나오면 아내분은? 정성일은 흐지부지 넘어간다.
정성일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더 플레이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정성일은 정말 세세하게 설명을 한다. 아직 영화에 들어가기도 전, 알트만 감독부터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력을 이야기하는데도 듣는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진이 다 빠져버릴 것만 같다.
이 친구는(라고 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을, 그래서 듣다가 웃음이 나왔다) 25년 생으로 57년에 [범죄자들]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고 한다. 영화 [더 플레이어]는 너무 좋은 영화인데 보는 사람이 적어서 극장이 별로 없다.
정성일은 늘 비슷한 톤이 있다. 그 톤으로, 그러니 좋은 영화를 사람들이 봐야만 좋은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다. 그러니까 친구를 억지로라도 데리고 좋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라고 한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정성일 평론가는 30년 전부터 말했다.
정성일 평론가는 다른 모든 방송에서 출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새벽에 하는 정은임의 라디오는 나왔다.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서론이 아주 길고 지난해서(정성일 평론가가 나오면 늘 그렇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이제 (제발) 영화 얘기를] 하며 운을 뗀다. 그러면 정성일 평론가가 영화 얘기에 들어가는데, 영화 이야기도 디테일하게, 세세하게 들려준다.
배우들의 대사까지 혼자 다 치면서, 마치 일인극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영화 이야기를 한다. 정성일 평론가가 나오면 정은임 아나운서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청취자 모드로 들어가서 라디오를 듣는 이들과 같아진다. 그 점이 재미있는 지점이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정말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데 보인다. 알트만 감독은 현재 변영주 감독에게도 영향을 준 감독이다. 변영주 감독이 유튜브에 나와서 책을 소개하는데 레이먼트 카버의 [대성당]을 소개했다.
이 소설을 소개하게 된 경위가 있다. 변영주 감독은 오래전 언젠가 로버트 알트만의 장편 영화 [숏컷]을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에 매료되었다. 그건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숏컷]을 추천하기도 했다.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몇 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서 만든 영화다. 내용이 충돌하지 않고 재미있게도 만들었다. 지금 보면, 현재 대 배우들이 된 배우들의 초년병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렇게도 많은 배우들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알트만의 영화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로 이루어졌지만, 또 하루키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먼드 카버가 한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 중에는 하루키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에세이에 레이먼드 카버가 많이 등장한다.
알트만, 레이먼드 카버, 하루키, 변영주 그리고 정은임과 정성일 평론가. 30년의 시간이 흘러도 세계는 이어져 있다. 알트만 감독은 2006년에 죽었다. 영화광이라면 알트만 감독의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