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8월 14일 25주년 기념 우드스탁이 막을 내렸다. 거기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언더 더 브리지]를 불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4일에 열렸다. 이 페스티벌은 당시 나흘 동안 계속되었다. 아마도 20세기 대중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아닐까.
당시 시대 상황은 베트남전이 점점 격화되었고, 반전 시위가 대학가를 휩쓸었다. 젊은이들의 이런 반항적인 움직임은 금방이라도 새로운 세계가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대중문화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분위기를 많이 타고 있었다. 그랬는지 그 시대만큼은 단순히 노래가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를 얘기하는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락앤롤은 젊은이들의 주장을 담은 연설문이었고, 가수들은 젊은이들의 정치적 대변인이었다. 때문에 락앤롤 콘서트 역시 달라지게 되었다.
그저 가수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대중집회 같은 그런 성격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런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자리한 목장, 우드스탁에서 락앤롤 콘서트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저 만오천 명 정도의 관객을 대상으로 특별한 고정출연자도 없이 여러 명의 가수들이 함께 노래하는 보통 그런 콘서트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국에 흩어져 있던 히피들이 마치 총궐기하듯이 우드스탁에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40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우드스탁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미 우드스탁은 단순한 락앤롤 공연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이 우드스탁 콘서트가 쉬지 않고 계속된 3일 동안은 결코 날씨가 좋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단 하루도 햇빛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날씨를 탓하지 않았다.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스스로도 감격했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드스탁] 중에서 조안 바에즈의 [죠 힐]이다. - 1994년 8월 21일 정은임
25주년이었던 1994년 우드스탁 역시 3일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았고, 35만 명이나 모였고, 입장료가 당시 11만 원이나 했다.
그럼에도 시대정신이 살아 있어서 젊은이들이 우드스탁에 모여들어 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의 권력자에 의 망가져 가는 미국이여 다시 일어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