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이 지속되던 밤이었다. 마른번개가 밤하늘에 치는 그런 무더운 날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티브이를 보는데 번개가 빠직 치더니 정전이 되었다. 정전이 시작되고 곧이어 더위가 방안을 잠식하고 등에서 땀이 나왔다.
이럴 땐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가만히 있으면 폭염을 견딜 수 있다. 정전은 이어지고 점점 더워졌다. 등에서 나는 땀은 티셔츠를 적셨고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의식의 세계는 덥다고 느끼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땀은 흐르는 대로 놔두고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면 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무의식은 그게 가능하다.
인간은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두 세계를 느끼지는 못한다. 두 세계는 뇌에 동시에 존재하며 무의식은 아직 과학자들 역시 몇십 년 동안 연구를 했지만 몇 퍼센트밖에 파헤치지 못했다.
어릴 때 정전이 되면 촛불을 밝혔다. 지금은 그렇게 어둡지 않지만 촛불을 켜 두었다. 촛불은 바람도 없는데 공기의 흐름 때문인지 하늘하늘 움직이며 타올랐다. 촛불에 매료되었다.
촛불을 자세하게 보기는 처음이었다. 매력적이었다. 촛불의 중간을 그대로 꼼짝 않고 보고 있었다. 조금씩 덥다는 생각에서 멀어졌다. 나는 촛불의 세계로 들어간다.
김춘수 시인의 [어둠]이라는 시를 보면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 거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차 촉심이 서고 불에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빛은 방 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디자인, 즉 현존재라고 정의한다. 현존재로서 인간은 존재자인 동시에 존재 자체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분명히 인간은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이런 존재자로서 돌, 나무,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존재의 전체 안에 속해있다. 그러나 인간의 탁월성은, 인간은 사유하는 본질존재로서 존재에게 개방된 채 존재 앞에 세워지고, 그리하여 존재와 관련된 채 머무르면서 존재에 응답한다는 점에 고이 깃들어 있다. 인간은 본래 이러한 응답의 연관으로 존재하며, 그는 오직 이러한 연관일 따름이다]라는 것이다.
존재와 존재자, 주체와 주체아. 분리하여 무의식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정전이 50분이 넘어가고 있다. 무더위가 온 집 안에 침투했다.
그러나 촛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그 세계 안에는 한바다의 깊은 심연에 들어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땀으로 등이 다 젖었다.
관자를 타고 땀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미동 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보고 있었다. 박에서 들리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 세계는 그야말로 적요한 상태였다. 정전이 오기 전 아무리 고요해도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늘 있었다. 냉장고의 모터는 인간의 심장과 비슷하다. 한 번 태어나서 숨을 쉬기 시작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 냉장고가 멈추는 순간 냉장고 안의 음식들도 싱싱함에서 멀어진다.
쉰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상한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 냉장고는 마치 인간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냉장고가 멈추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전은 그런 냉장고를 숨죽였다.
이토록 적요함 속에서 촛불의 세계는 더욱 확장했다. 발은 바닥에서 전혀 떼지 않았다. 쥐가 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옷은 땀으로 전부 젖었다.
촛불의 세계는 매혹적이며 위험하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날 수 있고 심지어는 파괴력을 지닌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촛불의 뒤 벽에 파리가 한 마리 붙어 있었다. 파리는 더위를 타지 않을 것이다.
파리는 더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워 보일지 몰라도 나 역시 더위를 모르고 있다. 파리는 집파리치고는 컸다. 파리는 정전에 반응을 하는지, 촛불에 반응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파리와 나는 마치 누가 누가 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를 내기하는 것 같았다. 파리와 나는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정적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공간의 모든 곳이 적막으로 채워졌다. 소리가 멈추었다는 건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다. 멈추거나 잠시 정지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소리가 소거된 공간에서는 시간마저 멈춰 버리는 착각이 들었다. 파리의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파리는 벽에 붙어서 다리를 비비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발바닥이 마치 거실바닥에 붙어 버리는 것 같았지만 꼼지락 거리지 않았다. 파리와 나의 다른 점이라면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땀이 흘러서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촛불의 세계에서는 빛의 굴절이 없었다. 빛은 초를 타고 올라올라 형태를 유지했다. 공기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는데 촛불은 흔들렸다. 촛불은 나에게 변하지 않는 굳건한 진실보다 불안하지만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어보라고 했다. 나는 촛불을 통해 반대편 벽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 있었다. 파리와 나의 거리는 고작 일 미터 정도였다.
그동안 나는 땀을 많이 흘렸다. 정전으로 인해 그야말로 집 안은 찜통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파리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존재가 몸에서 분리되어 공간으로 옮겨지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미동 없이.
나는 무의식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온 것이다. 다리에 난 쥐는 발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더 이상 감각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30분 이상 미동 없이 꼼짝 않고 있으면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착각이 든다.
내가 돌이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장만 미약하게 뛰었다. 나의 모든 세포는 멈추었다. 눈에 힘을 주지도 않고, 눈에 힘을 빼지도 않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파리를 보고 있었다.
그때 파리에 불이 붙으며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파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나의 무의식이 발현되어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켰다. 파리는 냄새까지 내며 깨끗하게 탔다. 경이롭다는 기분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그 뒤로 그런 능력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때의 그 경험이 실재인지 허구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워서 그때의 일을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다음 날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지금 만나는 장소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