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남자 요리사에 비해 여자 요리사가 적다.
냉부 첫 시즌에는 여성 요리사는 한 명도 없었다.
주위를 잘 생각해 보면 나이 들어 요리사로 남아 있는 사람도 남성이
대부분이다.
그건 외국으로 나가면 더 남성의 비율이 높을 것이다.
그럼 왜 여성 요리사가 남성 요리사보다 적을까.
여기 [선묘조제재경수연도]라는 그림을 보자. 작자미상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인가 임오군란인가, 전쟁이 일어나서 3, 4년 후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동안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와 타버린 집들을 복구하는데
고생했다며, 또 전쟁에 참여한 남자들의 부모들을 불러 궁에서 만찬을
대접하는 자리다. 100세까지 산 어르신들을 존경하는 의미로 궁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내용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겸상하지
않고 독상으로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전통이라며 잔치에서 여럿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독상으로 상 위에 그릇이 세 그릇이나 네 그릇 정도다. 궁에서 내오는
음식이라고 해서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뜨거운
음식은 뜨거울 때 먹을 수 있고 시원한 음식은 시원할 때 먹을 수 있다.
서빙을 보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비어있는 그릇을
가져가고 다시 모자란 음식을 내어 줬다.
또 하나는 좌측 상단에 조리를 하는 사람들이 전부 남자들이다.
궁중의 남자 조리사를 대령숙수라 했는데, 그들이 궁에서 대부분
요리를 했다.
당시 유교문화였던 궁에서는 일 년에 제사가 170건 정도 있었다.
그 많은 제사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이고 지고 나르고 자리고 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여자의 힘으로 불가능했다. 식재료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양도 양이지만 170건마다 그래야 하니, 힘이 좋은 대령숙수들이 조리를 했다.
요즘에도 고기를 나르고 납품하고 배달하는 건 남자들이 한다.
그러다 보니 수라간에 들어가는 남녀 비율이 16대 1 정도로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장금에서는 여자들이 궁의 요리를 전담했지만,
드라마를 위한 허구의 요소가 짙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의 상차림이나 연회
그림을 봐도 자기 앞에 자기가 먹을 음식만 놓여 있다.


서양 음식과 한국 음식이 상 위에 같이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서양의
음식으로만 채워진 경우도 있다. 아관파천 후 고종은 러시아에서 맛있게
먹었던 와인을 식탁에 자주 올렸다.
다 같이 모여 있되 밥상은 1인 독상 체재다. 똑같은 음식이 개개인에게
주어졌다. 전통 한정식 식당처럼 상 위에 여러 음식을 올려놓고 한 그릇에
여러 젓가락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전통이라는 말이 음식에만 붙지 않았다.
전통민속스님춤이라고 알고 있는 [승무]는 스님들의 전통 춤이 아니다.
스님이나 비구니에게는 춤이 없다고 한다. 이 춤이 생긴 지가 1970년대다.
문화재로 인정을 받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스님의 전통적인 춤은
아니다. 그래서 승무를 소개할 때 스님의 전통민속춤이라고 하는 좀
이상하지 않나 싶다. 그냥 전통민속춤이라고 불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김덕수 사물놀이도 전통놀이로 알고 있지만, 이는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다.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는 국가에서 인정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 고유의 가락과 장단으로 탄생시킨 음악, 사물놀이는 신명 난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여기서 질문이다. 그렇다면 [전통한정식] 같은 한 상에 가득 차리는
음식점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