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중턱에 해무처럼 안개가 군집을 만들어 걸쳐있었다. 손을 뻗으면 꼭 만져질 것처럼 보이는 그런 구름 같은 안개였다. 비가 많이 오는데 할머니는 개울 건너 밭에 갔다 온다며 나갔다.
비닐로 된 우비가 있는데 답답하다며 우산 하나를 들고 밭으로 갔다. 할머니가 나가고 천둥이 치고 비가 억세게 퍼부었다. 마루에 앉아 비가 쏟아지는 외가의 마당을 보고 있는데 또 천둥이 쳤다.
할머니는 언제 오나. 금방 온다고 했는데. 콰쾅하며 천둥이 주는 두려움에 잠시 귀를 막았다. 비가 퍼붓는데 안개가 낀 저 산은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조금만 내렸다면 지금 개울에 가서 가재를 잡을 수 있을 텐데. 할 수 있는 건 쪼그리고 앉아서 천둥소리에 귀를 막아가며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때 또 천둥이 쳤다. 이번 천둥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쥐고 그 사이에 고개를 파 묻었다. 쿠쿵하는 소리가 세상을 부숴버릴 것처럼 들렸다. 낮인데도 날이 어둡고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그때 오전 일찍 나갔던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우산을 들고나갔지만 홀딱 젖었다. 비를 맞아서 머리가 얼굴에 다 붙었다.
나는 할머니 하며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는 내 옷 젖는다며 나를 떼어놓고는 우리 똥강아지 밥 묵으야지,라고 하며 주방으로 된장국을 끓였다.
나는 네 살인가, 그때 시퍼런 가난의 서슬 때문에 집을 떠나 할머니 손에서 1, 2년 정도 지냈다. 매일 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불고 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할머니가 감자와 깍두기가 들어간 된장국을 해 주면 씩씩하게 먹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