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이 슌지는 정말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영화다. 원대하고 거대한 줄기는 그대 론데 거기서 뻗어 나오는 가지는 각각의 색깔을 지니고 있고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가 하다가도 느닷없이 원래의 줄기에 흡수되어 버린다.
키리에의 노래는 너무나 신비롭다. 그건 키리에의 음색에 있다. 누구도 닿을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키리에만의 음색. 그 음색에 빠지게 되면 어떤 이도 쉽게 나올 수 없다. 키리에의 노래는 드러내놓고 슬픔을 노래한다. 키리에가 노래를 부르며 위로 올라가는 길은 수월하다.
누구나 키리에의 옆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말도 못 할 정도로 목소리를 잃은 키리에가 노래만은 부를 수 있는 건, 그리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는 건 과거 키리에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슬프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 속에서 순수 만을 꺼내서 만든 것 같은 이와이 슌지의 집대성 같은 이 영화는 마치 하루키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이전의 소설과 주인공들이 자주 떠오른다. 목소리를 잃어버려 말은 못 하지만 노래는 할 수 있는 키리에의 처절한 음색을 들으면 그 예전의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의 차라가 생각난다.
언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키리에는 라스트 레터가 떠오른다. 라스트 레터의 일본 버전에는 히로세 스즈가 나오는데, 키리에의 조력자로도 히로세 스즈가 나온다. 다른 영화 속에서의 히로세 스즈가 아닌 연기를 보여준다.
잇코로 나오는 히로세 스즈는 엄마와 정돈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데 그 모습은 하나와 엘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엘리스의 철없는 엄마와 청소가 전혀 되지 않았던 집이 생각난다. 잇코의 엄마로 공교롭지만 이전에 올린 토미에의 주인공 나카무라 미우가 나온다.
이와이 슌지는 야스배우들을 많이 영화에 출연시켰다.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의 친구로 나오는 가수 겸 배우인 코코가 성인배우로 영화에 나오고 그녀의 장례식에도 실제 성인배우들이 등장해서 정극연기를 펼쳤다. 나나미로 나왔던 쿠로키 하루도 이 영화에 나와서 키리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역시 립반윙클의 신부가 떠오른다.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 손을 내밀지 못한 것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는 것은 아닐까. 1인 2역을 하는 키리에는 오겡끼데스카의 러브레터가 떠오른다. 차갑고 냉정하기만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키리에가 점점 목소리를 찾아서 노래를 부른다. 감동적이다.
키리에 역의 가수 아이나 디 엔드의 목소리가 워낙 독보적이라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노래를 어설프게 부르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해낸다. 초반에 버스킹에서 아이묭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몇 년 전, 같은 설명은 없다. 그저 좀 다른 색감과 분위기로 그걸 알 수 있다. 이와이 슌지만의 연출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쁨을 제대로 느낀다면 슬픔을 깊게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 너무 행복해한다면 질투하지 말고 저렇게 큰 행복을 느끼기 전에 슬픔을 가득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이 힘들고 짜증 나는 세상 조금은 다르게 보일 테니까.
립반윙클의 신부도, 이 영화도 감독판 세 시간짜리가 좋다. 한 시간 이상 잘려나간 극장판은 별로다. 아이유와 비비의 중간즘 닮은 얼굴을 한 아이나 디 앤드의 노래를 들으면 요즘 청춘들에게 위로의 1순위는 음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를 그리워하고, 언니가 되고 싶었던 길 위의 푸른 꽃 루카, 키리에의 노래 같은 이야기 ‘키리에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