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잠이 들기까지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당신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면 세상의 불안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쓴다는 건 요즘은 꽤 묘한 일이 되었습니다. 편지라는 건 처음에는 참 어렵습니다. 어떤 말로 서두를 꺼내야 할지 고심하게 됩니다. 이런 말을 적었다가 다시 지우고 저런 말을 적었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결론은 좀 더 잘 적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면 편지는 어쩐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됩니다. 편지는 계속 쓰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느낄 수 있습니다. 꾸미는 것을 지치지 않고 하는, 이제 막 화장에 눈을 뜬 여고생처럼 말입니다. 편지는 쓰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 같아서 또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고민이라는 건 처음과 끝에 붙어서 늘 저를 괴롭힙니다. 넓은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부표가 된 기분까지 듭니다. 코로나 시기에 유난히 많은 제비를 봤습니다.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11월 초까지 조깅을 하는 강변에는 뱀들이 출몰했습니다. 뱀들도 겨울잠을 자러 가야 하는 것을 잊을 정도로 깨끗해진 강변에 나와서 자연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이 활동하지 않으면 자연이 숨을 쉽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제비를 보는 건 놀라움입니다. 제비가 제 앞으로 날아와 바닥에 바짝 붙어 활공하더니 저 앞의 전깃줄에 가서 앉았습니다. 제비의 비행은 인간의 미미한 움직임으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비가 그동안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참 반갑더군요.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사준 거북이가 어항을 빠져나가 없어져 버려 침통한 얼굴로 지냈는데, 몇 개월 뒤 등에 먼지가 가득 낀 채 좀 더 커진 채로 장롱 밑에서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존재가 그렇겠지요. 제니스 이안의 ‘엣 세븐틴’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 노래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의 ‘엣 세븐틴’을 줄곧 들었습니다.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도 생각이 나고 말입니다. 14화인가, 동훈이가 정희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 ‘엣 세븐틴’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굽은 등이 보이고 그들을 위로라도 해주듯 제니스 이안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꽤 좋았어요. 좋은 장면이라 생각이 듭니다. 제니스 이안의 편안한 목소리가 나의 불안한 열일곱 살 시절의 한 부분을 채워주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제니스 이안의 목소리가 그때나 지금이나 또 변함없는 것 역시 이상한 기분입니다. 그때는 그 노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좋아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란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수순처럼 당신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늘 십칠 세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재미없는 나의 이야기에 늘 웃어주었던 모습이 꼭 열일곱 살 소녀의 모습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신의 웃음 그 너머의 무엇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많이 춥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있습니다. 그곳에서 따뜻하게 지내세요.


https://youtu.be/Yi-5tiHE48c?si=npgGSMxZ0mxTZmG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