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운전을 하다가 도로 한가운데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있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저 신발 주인은 어쩌다가 한 짝을 잃었을까. 아니면 사고를 당했을까. 장갑이나, 수건, 옷이 떨어져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신발은 그런 생각에 휩싸이게 만든다.      

         

 신발 주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상상이 되고 만다. 만약 한 켤레가 떨어져 있다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덜하다.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한 짝만 있다면 신발 주인이 불행한 일을 당해서 그렇게 된 것만 같다.   

            

 나는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다. 구두를 사 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전부 운동화만 신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구둣발 소리가 듣기 좋았다. 구두를 신고 바닥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소리. 무척 듣게 좋은 소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옆집에 사는 대학생 형이 있었다. 4학년인데 구두를 신고 다녔다. 제대도 했고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나는 대학생이야, 같은 모습이었다. 서류 가방 같은 가죽으로 된 가방을 손에 들고 다녔다. 나는 그 형이 정말 멋있었다. 중학교 때 그 형에게 과외받았다. 영어다. 나는 영어 성적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과외받은 후에 신기하게도 차도가 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동네 친구에게 했더니 같이 친구의 어머니가 같이 과외받게 했다. 형은 답답할 법도 한데 우리에게 영어를 천천히 잘 가르쳐 주었다.       

        

 어느 일요일에는 우리를 데리고 소풍까지 갔다. 마치 초등학생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영어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 두근거리는 기분이 과외받지 않았을 때와는 달랐다. 형은 대학교 졸업 후에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고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마냥 행복한 앞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 다닌 지 일 년 만에 과로사하고 말았다. 형은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소풍을 갔을 때도 바람을 느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파란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려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고 천재지변으로 사람들은 고통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창 신혼이고 아직 애도 없었는데 피곤해서 잠들어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후에 과로사라는 결론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형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구두를 신고 멋있는 소리를 내며 걸었다. 형이 죽고 형의 집에 갔을 때 형의 신발 한 짝을 보았다. 그 뒤로 도로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은 바닥에 뿌려진 피 같은 기분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늘 하늘이 막역하게 보였다. 하늘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허물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이렇게 바다처럼 펼쳐진 하늘을 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는 걸 좋아한다. 이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는, 차의 운전자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하늘에 구름은 늘 있다. 그리고 구름은 매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매일 다를 수 있을까.         

      

 구름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도 구름처럼 같은 인간은 없다. 쌍둥이라도 둘은 다르다. 인간은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에 귀는 두 개라는 건 같지만 그 모양새가 전부 달라서 같은 얼굴의 사람은 없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마음 역시 구름처럼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은 방금까지 저 모양이었지만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모양이 된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시시각각, 시시때때로 변한다.      

         

 에이리언에서도 인간은 마지막에 감정 때문에 선택을 흩뜨려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전부 제각각이며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을 보면 인간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 하늘 위에 있어서 구름에 날아가면 만져질 것 같지만 실은 구름 가까이 가면 실체가 없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실체라는 게 없다. 언젠가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빗대어서 만연한 폭력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생각일 뿐이지만.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