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들아 하루키의 단편집 ‘고독한 자유’에 관한 이야기야. 초기 단편집으로 단편 소설이 왕창 실려 있어. 요즘처럼 찔끔찔끔 실려 있지 않고 아주 많은 단편 소설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집인 거 다 알지?
이 소설집에는 깜짝 선물 같은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가 있어. 이 소설은 후에 단행본으로 삽화와 함께 나와서 더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
허락도 없이 여름이 간 것처럼 곧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겨울이 뺨을 후려갈기듯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가 생각이 나
이 소설은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가장 판타지며 가장 재미있고 가장 하루키답지 않으면서 제일 하루키다운 것 같기도 해. 아주 기묘하며 만화적이고, 그래서 읽고 있으면 상상이 되는데 중간중간 기다렸다는 듯이 양사나이의 귀여운 삽화가 등장해
양사나이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양사나이가 떠올라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이 양사나이라는 캐릭터는 존 버거의 소설인가? 곰의 가죽을 뒤집어쓴 축축하고 어두운 소녀의 캐릭터를 보고 만들었다고 하던데 잘 기억이 안 나네
이 소설 속에는 그간의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진지하지 않고 코믹을 장착한 채 등장해. 양사나이를 시작으로 양박사(댄스 댄스 댄스)도 나오고, 208, 209의 쌍둥이(1973년의 핀볼,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도 밝고 유머를 잔뜩 지니고 있어
그 외에 왼쪽, 오른쪽 꽈배기 사나이들과 바다 까마귀 아줌마 등 종합 선물포장마차야. 하루키는 마음속에 늘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아직 성장하지 않은 하루키가 있어서 이렇게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나 봐
아마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장편 소설에서 묵직하고 중압을 견뎌내야 했기에 하루키는 이 소설로 다시 불러내 모두 크리스마스니까 그냥 즐겨야지 하는 것 같아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양사나이의 저주를 풀어준다고 하지만 양사나이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재미있어해. 그간 장편소설 속에서 뒷짐 지고 무게를 잡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기분이랄까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에는 도넛이 빠질 수 없지. 하루키 하면 또 도넛이잖아. 예의 중간이 뻥 뚫린 도넛에 갖은 철학과 문학적 양념을 뿌려 놓은 그 도넛, 그 도넛이 잔뜩 등장하고 잔뜩 먹으며 행복해하지. 으레 행복해야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니까
그래서 양사나이는 여차여차해서, 저주에 걸려 저주를 풀기 위해 이상한 곳으로 엘리스처럼 떨어지고 또 기어오르고 기괴한 모습의 그 위의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고, 바다 까마귀 아줌마의 등에 올라타서 날아가고,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에 문을 열어보니 모두가! 어떻게 되었을까
기괴한 하루키식 판타지동화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