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이 드는 계절이 돌입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어 버리면 일단 몸에서 반응이 온다. 여름 내내 건조하던 손바닥에 미미한 다한증이 발동을 건다. 피부가 푸석해지며 바뀌는 계절이 안간힘을 쓰고 대항하려 한다. 그 격차에 오는 기묘한 기분은 반드시 기시감을 떠올리게 한다. 해가 뜨겁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을 맞이하면 맑은 날 가운데 한두 번은 흐리거나 해가 구름 저 너머로 숨어 버린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기보다 차갑고 반팔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으로 바뀐다.

가을인 것이다. 가을은 악마의 계절이다. 보이는 풍경도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도 옷을 갈아입고 피부도 그에 응당한 옷을 갈아입는다. 악마가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다. 악마는 자신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기시감으로 감춰 버린다.

기시감은 기묘하다. 별거 아닌 것에서 아? 하는 순간 기시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보름달 빵을 보는 순간 기시감 속으로 들어갔다. 보름달 빵은 기시감의 살아있는 산물이다. 잘 먹지는 않지만, 잘 먹지 않아서 아주 가끔 접하면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기시감이 물어 뜬 물수제비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데 보름달 빵을 따라온 기시감은 추억을 끄집어내고 기억을 불러들인다.

보름달 빵

유튜브 먹방에서 가끔 보름달 빵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보름달 빵은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보다 맛이 더 있겠냐마는 보름달 빵 만의 맛이 있는데 그 맛은 추억의 맛이다. 추억을 건드린다. 어릴 때 먹던 보름달 빵. 봉지를 뜯어 크게 한 입 베어 먹기도 했고, 한 손으로 조금씩 뜯어서 먹기도 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빵 카스텔라를 밀어낸 빵이 보름달 빵이었다. 카스텔라와 다르게 보름달 빵 안에는 크림이 있었다.

달달하고 하이얀 악마 같은 맛에 반해 버린 거지.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 그리고 보름달 빵을 생각해. 대문 밑 계단에 앉아서 볕을 쬐며 보름달 빵을 먹었지. 기억 속의 볕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해. 보름달 빵과 함께 우유도 같이 먹었지. 우유는 초코우유야. 초코 맛이 나는 우유와 보름달 빵 하나면 정말 행복했지. 보름달 빵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 친구가 보름달 빵으로 같이 놀자고 하면 안 놀 수가 없었지.

지금은 유튜브 먹방에서 보름달 빵을 맛있게 먹지만 사서 먹으면 맛있지만 맛이 너무 나는 맛이라 맛이 없게 느껴진다. 지금 먹으면 보름달 빵은 너무 달디달고달디단 맛 때문에 잘 먹지 않지만 어릴 때에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것저것 바뀌는 것들이 있다. 식성이 그렇고 보름달 빵을 대하는 것 역시 그렇다. 가을이 오는 이 계절에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던 보름달 빵을 오늘은 한번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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