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찌는 건 자칫 방심하면 금방이다. 매일 조깅을 하고 매끼 식단을 조절해 가며 지내지만, 이렇게 지낸 지도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한 순간 눈을 돌리면 살은 찌고 만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은 더 쉽게 찌고, 근육 유지는 더 어렵게 된다. 그래서 운동도 고강도 운동을 더 해줘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게 쉽지 만은 않다.
지금 시대에 살을 빼는 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 시대다. 호르몬 불균형을 잡아야 한다. 나는 15년 전에 입었던 옷을 아직 입고 있는데 그렇게 유지하는 게 눈물겨울 만큼 노력을 한다. 국물 음식은 거의 먹지 않으려 하고, 짜고 매운 음식도 잘 먹지 않는다. 좋아해서 매일 먹는 음식에 두부, 생양파, 피망이 있다. 그리고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매일 몇 개씩 먹는다.
살이 찌는 건 우 리모두의 숙제다. 내가 비슷한 몸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동안 나를 따라서 조깅을 했던 몇몇이 있었다. 대부분 체중이 많이 불어서 뚱뚱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몇 달을 꾸준하게 하지도 못하고 전부 다 떨어져 나갔다. 조깅으로 살을 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몸이 무거운데 달리기를 하면 당연하지만 다리에 부하가 걸리고 무릎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조깅은 살을 어느 정도 뺀 다음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공복에 조깅을 하는데 살을 빼려고 따라왔던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왔다. 당연하지만 조깅을 하고 나면 소화가 되고 다시 허기가 진다. 집에 가서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지만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 배달음식을 먹는다. 이렇게 반복을 거치면 조깅을 꾸준하게 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살이 더 찌는 것이다. 조깅으로 살을 빼는 건 무리다.라고 생각한다. 살을 뺀 다음에 조깅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살을 빼려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주위의 살이 찐 사람들의 특징은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나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는다. 배달어플도 없다. 음식 앞에 앉았을 때 신체는 주인에게 안 돼, 더 이상 먹지 않아도 충분해,라고 하지만 뇌가 빨리 먹으라고 서번트를 흘려보낸다. 뇌의 어느 구간에서 도파민 같은 물질을 뿜어낸다. 그러면 억제가 불가능하면서 음식을 먹게 된다. 배달음식, 열량이 너무 높고 초고칼로리 음식이다. 맛을 내야 하기 때문에 소스범벅인데 이 세계에 빠지게 되면 의지만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의지만 가지고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사십 대가 넘어가면 먹는 건 더 줄이고, 운동은 더 많이 해야 한다. 배달음식에서 멀어져야 하고 배부르게 먹지 않고 배고픈 걸 잊을 정도로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살을 뺀다고 해도. 다이어트에 성공을 했다고 해서 20대처럼 허리가 날씬하고 근육이 탄탄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저 옷을 입었을 때 보기 좋을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만족감을 주욱 끌고 가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적게 먹고 운동을 고강도로 자주 해줘야 한다. 그렇게 살기 싫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냐. 나는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여름에 맥주 시원하게 많이 마실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대신에 찐 살 때문에 불만이나 불편함을 내 앞에서 토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잘 보지는 못한다. 자연사를 하던 사고사를 당하던 사람은 다 죽는다. 전부 병원에서 죽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죽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집에서 눈을 감았다. 집에서 각자 죽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 죽은 집을 사거나 그 집에서 사는 걸 꺼려한다. 하지만 지금 잠을 자는 그 집이 실은 어쩌면 누군가 이전에 그 방에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방 한구석에서 사람들은 죽어갔다. 가족이라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묻겠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죽은 사람의 방에서 잠이 든다는 건 조금 꺼림칙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이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집이 싸게 팔렸다. 같은 설정이 많다. 그렇다면 병원은 어떨까. 병원의 병실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은 아주 많다. 누군가 병실에 누워있다면 그 병실의 침대에서 누군가 이전에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원의 특색이 있어서 그 사실을 알 수도 없고, 환자는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병원 측에서 그런 일을 발설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누군가 죽었데?라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미간을 좁힌다.
배달 피자는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달피자는 비만의 원인이 된다. 여러 원인을 불러일으키는 배달음식이 많지만 내 주위에서 다른 배달 음식보다 배달피자를 시켜 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피자는 말 그대로 맛있다. 달고 짠맛이 적절하게 피자 속에 다 들어 있어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너무 맛있는 것이다. 너무 맛있다는 건 맛이 너무 난다는 말이다. 맛이 너무 나는 건 피자 고유의 맛이라는 건 없다는 말이다. 정제 탄수화물의 맛에 전부 많은 양념의 맛이다. 살이 찌는 것이 사회문제에 돌입하게 되면 이런 정제 탄수화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배달피자는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 같은 서민층에서 먹기 때문이다. 두 명 정도가 배달피자 한 판으로 한 끼 정도는 때울 수 있으니 서민층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서민층에서 비만인들은 어릴 때부터 더 많이 나타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었을 때 정부가 개입을 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배달피자라고 해도 소상공인 중소기업 규모의 배달피자는 미래에 사라질 수도 있지만 대기업의 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할리우드 스타인 벤 에플릭이 던킨 도넛의 광팬이며 집에서 쉬는 동안 피자를 먹기 때문에 이 소식이 파파라치나 매체를 통해 퍼지게 되면 광고효과가 엄청날뿐더러 건강에 신경을 무척이나 쓰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저 피자를 먹는군, 던킨 도넛을 먹는단 말이야,라며 사람들이 찾게 된다. 두 이야기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어서 적은 건 아니다. 우리는 늘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확신에 찬 사실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붕괴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 집 밥이 건강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매인 음식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유튜브 먹방에서 매운 음식이 스트레스를 날려 준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혹해서 먹어봐야 손해다. 그러니까 살을 빼고자 하는 사람이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매운 음식을 먹는 건 너무 안 좋은 것이다. 집 밥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 탑 타령하는 노래, 드라마, 영상은 끊어야 한다면 끊는 게 좋다. 그놈의 집 밥, 집 밥은 전혀 건강하지 않다. 어머니의 손맛은 살이 찌기만 할 뿐이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푸짐하고 맛있게 음식을 만들지만 이제 어머니들도 그런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간단하게 차리고, 배부르지 않게 먹는 습관이 서로에게 좋다. 덜 차리고 설거지 거리가 없고, 무엇보다 건강하다. 찌개 끓이고, 탕, 국 만들고, 지지고 볶은 반찬에 구운 고기에 쌀밥 한두 그릇씩은 요즘 시대에 전혀 건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