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나왔다. 목감기다. 어제부터 목이 꺼끌꺼끌하더니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목이 콱 막히고 따끔거리는 정도가 심해졌다. 어제 목감기 기미가 왔기에 구비해 둔 목감기 약을 하나 먹었다. 목감기 약을 먹었을 뿐인데 물에 몸이 잠기듯 잠이 계속 쏟아졌다. 앉아서 버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병든 닭처럼 머리가 1초에 한 번씩 까닥. 잠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영혼이 잠에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오면서 약국에 들러 목감기 약을 새로 샀다. 약국은 한가했다. 그 약국은 늘 한가하다. 주위에 병원이나 내과가 없어서 들어가면 약사는 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약사는 나이가 있는 남자로 가운을 벗으면 약사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그 약국의 손님은 항상 나뿐인가? 할 정도로 한가했다. 약국으로 가는 길은 늘 다니는 길에서 한 블록 떨어진 도로인데 일상에서 약간 벗어나는 기분이다.


마치 이런 봄날에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주말의 느낌이 들었다. 두꺼운 옷이 필요 없고, 그렇다고 반팔은 아직이다. 먼지와 봄꽃의 기운 때문에 주위가 부옇다. 눈을 감으면 헤엄을 쳐 그 먼 기억 속으로 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다니는 길목에 동네 목욕탕은 전부 사라졌다. 찍어 놓은 사진에서나 동네 목욕탕과 동네 이발소를 볼 수 있다.


또 기침이 나온다. 이번 목감기는 갑자기, 느닷없이 칼칼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나의 목을 감기가 잠식했다. 침을 삼키면 따끔한 그 느낌. 기침을 한 번 하면 머리가 띵 하여서 어떻게든 기침을 참아보려 하지만 기침을 참으면 참을수록 감기가 나를 미치도록 약 올리는 느낌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기침은 한 번만 나오지 않는다. 기침은 꼭 북수형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기침을 여러 번 한다면 민폐가 되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코로나 전에는 목감기가(감기가 거의 잘 걸리지 않는데) 걸려도 약을 하나 먹으면 곧바로 목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어제는 약을 하루 분을 먹었다. 세 번을 먹고 하루가 지나 오늘이 되어서야 목이 가라앉았다. 목감기가 걸려 몽롱한 상태에서도 조깅을 해서일까. 잘 받던 약발도 이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이런 게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5월의 시작이다. 이제 햇살이 바삭바삭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조깅으로 흘린 땀을 식혀 주는 계절이다. 아침에 나오는데 몽롱하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비치는 햇살 사이에서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볕을 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약간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햇살이 휠체어를 탄 할머니에게 내려앉고 놀이터 주위의 나뭇가지가 만들어 낸 그림자들이 아스라이 보였다. 감기약 때문에 몽롱한 나의 상태 때문에 더 사진처럼 보였다. 눈으로 사진 같은 풍경을 한 번 담고 놀이터를 지나쳤다. 여긴 동해에 물려 있어서 그런지 저온 현상 때문에 그렇게 덥지 않다. 겉옷을 입고 걸어 다니기 좋은 날이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서 어린이들의 봄 소풍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같은 날은 봄 소풍 가기 좋은 날이다. 학교에 다 같이 모여 소풍 장소까지 걸어간다. 걸어가는 그동안이 얼마나 즐거운가. 봄소풍은 가기 전날이 즐겁고, 갔다 와서 또 즐겁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렇다. 봄소풍을 갔다 온 날 저녁에는 김밥도 아직 있고 전날 받은 용돈이 남아서 마음 한쪽이 풍족했다. 친구들은 계속 놀자고 하고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일찍 들어와서 봄이불에 몸을 비비는 그 느낌이 좋아서 나가기 싫지만 친구들과 놀고 싶고. 햇살이 바싹해지는 오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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