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시감이 많이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은 늘 엘리베이터 어딘가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아버지의 작업복 냄새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난다. 사춘기에 들어 아버지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등에 매달려 작업복 냄새를 맡았을 때가 있었다.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했던 했던 어린이였던 시절.


냄새는 기억의 마지막까지 붙어 있다. 이 죽일 놈의 후각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후각은 여러 감각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억을 붙잡고 있다.


벚꽃이 전부 떨어지고 그 자리에 하얀 눈송이 같은 아카시아 꽃이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렇게 밝고 맑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도심지에서 나의 고독을 구원해 주는 사람은 나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다.


어마어마한 큰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외롭다. 누구나, 어떤 누구나 실존적인 고독을 가지고 있다. 그 고독의 늪에서 구원이 되는 사람은 생판 모르는 다른 남자일 수 있다. 내가 기대하지 못한 만남이더라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만남이 될 수 있다. 인생이란 어떻게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잘못 탄 열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줄 때가 있다]


블레이드 러너 속 세상은 2019년이다. 발달에 발달을 거듭하여 초고도화가 된 세상이다. 그 세상이 201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다. 현실은 영화 속 아무 먼 미래보다 5년이 더 지났다.


당시에는 2000년이라는 숫자가, 그런 년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마음속에 여기고 있었다. 맨 앞의 숫자 1이 바뀌는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미래 영화는 디스토피아적이다. 어둡고 암울하다. 미래는 있지만 내일은 없고 오늘 산다,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처럼 보인다.


목욕탕의 탕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을 참고 있는 것이 싫었던 어린 시절, 이맘때였다.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목욕탕에 가서 탕에 몸을 풍덩 던졌을 때 그 기분. 온탕, 냉탕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곧 초파일이 다가오면 티브이에서는 서유기가 나왔다. 가장 좋은 계절, 난방기기와 냉방기기가 전혀 필요 없는 계절. 뛰어다니며 놀면 땀이 나지만 그늘에서는 무한 사색이 가능한 시기였다.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땀을 흘리고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고 집으로 오면 어머니는 마른 김에 밥을 싸 주셨다. 마른 김이 조미김보다 맛있을 리가 없다. 입천장에도 쩍쩍 들러붙고. 그러나 기억은 조미김보다 마른김을 붙잡고 있다.


아버지는 마른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살짝 찍어서 주었다. 마른 김에 밥을 싸 먹는 건 이렇게 먹는 거야.라는 식으로. 그러면 참새새끼들 마냥 동생과 나는 따라 하면서 마른 김에 밥 싸 먹는 맛을 알아갔다.


아버지와 목욕 후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오는 동안의 풍경이 기시감을 필두로 눈에 선하다. 그 도로와 여 중학교의 담벼락, 전봇대, 작은 슈퍼.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풍경과 기억이 마른 김을 먹고 있으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후각에 들러붙은 추억을 조금씩 연소시키며 오늘 하루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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