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걸 봤어요. 누구나 여기를 지나가죠. 그러나 자신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죠. 그건 아마도 너무 당연해서 일 겁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면 의식은 그 당연함을 의식에서 배제하죠. 매일 다니는 길을 오늘도 지나쳤죠? 근데 기억이 납니까?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한 곳을 다녔기 때문에 눈여겨 살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늘 다니는 길에 어떠한 이벤트가 일어났다면 그 기억은 꽤 오래갈 겁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깊게 생각지 마세요.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분명 있거든요. 집중과 선택. 우리는 집중과 선택에 있어서 깊게 생각합시다. 신발을 신을 때 오른쪽 발을 먼저 신을까 깊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은 과부하가 올 겁니다. 아시겠지요.



오늘도 비가 오는데요. 일주일 넘게, 체감상으로는 2주 내내 차가운 비가 오고 날이 흐리고 잿빛 하늘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은 이런 날을 선호한다는데 저는 맑고 밝은 날이 좋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일단 조깅이 어렵습니다. 비가 와도 일단 강변 조깅 코스로 나가는데 비가 오면 러닝화를 바꿔서 신는데 달리기를 포기하고 비막이가 설치된 곳에서 스쾃이나 팔 굽혀 펴기를 합니다. 실컷 저 먼 곳까지 달리고 싶지만 비가 오면 일단 그게 안 된다. 우산을 쓰는 것도 귀찮고, 비는 차가워서 주위의 기온을 앗아간다. 그래서 2월에 내리는 비는 차갑고 날은 춥다. 그런 날이 2주 동안 계속되고 있어요. 결락감이 깊게 드는 날이 이어집니다. 등에 아이가 올라탄 것 같아요. 어떻게 겨울 장마가 이 시기에 올 수 있죠?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네요.



어느 영화를 보니 죽음이 임박했을 때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었어요. 데이트 상대를 잘못 만나 구타를 당하고 드럼통에 들어가서 땅에 묻혀 죽음을 맞이하며 벌벌 떨다가 노래를 읊조리듯 불렀어요. 근데요,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일 테니까요. 죽음을 생각하면 일단 겁이 납니다. 죽음이란 태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있어서 겁보다는 뭐랄까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꾸면 꼭 죽기 직전까지 가는 꿈을 꿉니다. 칼이 배에 푹 찔리기 직전이나 배에 들어오는 그 순간 잠에서 깹니다. 어떤 날은 불구덩이에 빠지는 찰나에 깨어납니다. 정말 겁이 납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요.


우울이란 어째서 때때로 저를 괴롭히는 걸까요. 우울이란 원래 없었는데 제약회사가 세계 곳곳에 생김으로 해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우울을 겪게 하는 묘한 물질을 넣어 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제약회사에서 이런 모종의 계획을 현실화한 거지요. 그래서 우울증에 좋은 약을 처방받도록 유도했습니다. 우울함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거다 싶은데 느닷없이 저거다 싶게 만들어요. 멍하게 있으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 대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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