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카스텔라를 누가 사줬다. 스벅 카스텔라는 맛있다. 이 카스텔라는 십 년 전에 스벅에서 먹었을 때의 맛과 모양에서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맛이라는 건 시간과 장소, 먹는 이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저 카스텔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맛이겠지만 지금 먹는 나의 입맛에는 그때의 맛보다 훨씬 맛있다고 느끼고 있다. 단맛을 더욱 많이 느껴버리는 신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학창 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녀석이 시간이 훌쩍 지나 나를 찾아와서 그때 내가 너무 했어, 미안하다. 정말 사죄한다. 라며 사과를 받아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잊고 지내고 있었지만 그 녀석을 보면 그때의 일이 또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 가물가물해져서 늦게라도 일부러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아야 할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과를 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게, 사과를 하려면 그때의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녀석이 하는 사과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이미 시간이 지나 상처가 되고 흉터가 된 나에게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 흉터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에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 이렇게라도 찾아와서 사과를 하니 받아줄게,라고 말을 할지는 몰라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을 수 있다.
그 당시, 그때 괴롭힘을 당해 죽고 싶었던 나를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도 시기가 있고 방법이 있겠지. 비록 진심이지만 사과를 하는 시기가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될까.
우리는 별반 다를 게 없는 비슷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똑같은 인간은 없다. 복잡하게 변한 만큼 그만큼 인간은 단순해졌다. 나와 다르면 항상 경계하고 공격심을 가지게 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령 그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나와 다르면 공격을 한다. 그 사람의 약점을 부풀려서, 그 점을 파고들어 공격을 하면 같이 공격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명일 때 하는 공격보다 여러 명이 공격을 하면 분명 사실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의심하게 된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나. 하지만 진실이라는 게 반드시 사실이지도 않다. 아니 진실은 사실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진지하고 진지해서 너무 진지해도 괜찮아, 심각하지만 않으면 돼. 진지한 건 환영이지만 심각해지면 답이 없어.
여름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하늘에 금을 긋고 사라져 버린 저 선을 보면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른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삶과 생활의 사이에서 비어 가는 주머니로 하늘을 보았을 때,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곳만 알지라도 안전한 궤도 속에서 수많은 별 들 중에 하나로 살아가도 좋으련만 저 별은 궤도를 이탈해 다시는 궤도 속으로 진입을 하지 못할지라도 자유롭게 하늘에 한 번의 금을 긋는다.
안전한 삶을 거부한,
완전하기보다 불완전한 자유를 선택한,
굳건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는,
금방 사라질지라도,
짧지만,
저기 저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하찮지만 소중한.
김중식은 말했다.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