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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안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연락도 끊기고 서로 만나지 않게 된 건 15년도 훨씬 넘었다. 아니 17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그는 나보다 두세 살 많았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한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만나면 악수를 하며 이름을 밝히고 나이를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나 설령 나이나 더 나아가 이름을 알지 못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면 그저 별명을 부르면 되니까. 그는 나보다 두세 살 많았으니 형이라 부르면 된다.
그는 꽤 묘한 사람이다. 외로워 보이는 등을 지니고 있었다. 등은 볼품없을 만큼 초라했고 그 작은 등에는 외로움이 기분 좋게 올라타 있었다. 그의 등에 올라탄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나눠 받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외로워했고 그 외로움에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두에 나와 그가 속해 있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모여서 술을 마시게 되면 외로움에 몸부림을 쳤던 시기였다.
그는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학원은 단과 학원으로 영어, 수학 그리고 다른 과목도 수업을 하고 있어서 학생들로 북적이는 학원이었다. 학원은 방학이 되면 미어터질 정도로 교실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학원은 쉬는 시간에 피아노 곡을 틀어 줬는데 그 곡이 카펜터스의 리처드 카펜터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이라는 건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리처드 카펜터가 개시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렌을 거식증과 몸에 대한 집착으로 이끈 장본인이 리처드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콤플렉스를 덮어 씌워 카렌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게 하고 그저 음악적 능력이 탁월한 오빠가 시키는 대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만 불렀다. 카렌은 비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그와 알게 된 후에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한 번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와 나는 성문종합영어를 들었다. 그는 늘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마음 맞는 몇몇이 같이 어울려 밥을 먹거나 당구장을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갔지만 그는 늘 혼자였다. 나 역시 어울리는 건 별로라서 혼자서 학원을 나오곤 했다. 학원의 지하에는 식당이 있어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분식집 라면만큼 맛있어서 대부분 라면에 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얼마간 저렴한 허여멀건한 국수를 먹었다. 그는 김밥이나 다른 건 전혀 먹지 않고 오직 국수만 먹을 뿐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왜 항상 국수만 먹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단순히 국수가 맛있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의 행색이 늘 초라하고 국수만 먹고 있어서 가난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가방도, 옷도, 신발도 심지어 쓰고 있는 안경도 너무나 초라했다. 누가 봐도 나 초라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친해진 후 그의 집에 한 번 갔을 때 대문을 열고 드러나는 큰 마당을 지나 나타나는 저택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세워져 있는 많은 골프채가 그는 가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행색을 초라하게 하고 다니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는 당시 3급 공무원이었고 그는 막내였다. 형과 누나들은 그와는 다르게 명품으로 스타일을 내는 사람들이었고 그와는 무척 달랐다. 다르다는 말은 얼굴에서 형과 누나들은 서로 닮았는데 그 혼자만 어디서 주워 온 것처럼 얼굴이 달랐다. 막내인 그의 얼굴이 큰 누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 외 모든 면이 그와 형제자매들은 달랐다. 그는 막내였지만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의 콩팥처럼 볼품없는 얼굴에 남루한 행색으로 다녔다. 학력 또한 너무 달랐다. 형과 누나들은 전부 SKY 대학을 나왔는데 그는 상고에 진학을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 상고에 진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겨우 상고에 들어갔고 그때 아버지와 마찰이 심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성문종합영어를 듣고 전문대 시험을 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문종합영어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게 수업시간을 보냈다.
그는 집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먹을 때 빼고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형과 누나들이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대동해서 다가왔지만, 그의 초라한 행색에 다가온 사람들이 마음을 한 번 돌리고 그의 말투와 형편없는 언변에 남아있는 마음도 돌려 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