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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굽는데 토마토를 같이 넣어서 구웠다. 토마토는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졌다. 토마토를 한 입 먹으니 주욱 하고 토마토의 즙과 기름이 동시에 폭죽이 터지듯 터져 나온다. 쓰읍 할 만큼 즙이 나왔다. 그렇게 무슨 맛으로 먹냐? 같은 말을 하면 내 맘이야,라고 말하겠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내 맘이야 가사가 떠오른다. 한숨을 크게 쉬면 날이 밝아와 치마를 둘러 입고 나가볼 거야, 난 신문을 보며 눈이 뒤로 돌아가 내가 이루려던 꿈에 네가 깔리진 마, 날 행복하게 만든 거라면 난 마당에 나가 잡초나 뽑아야지 말 시키지 마. 정말 멋진 가사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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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들만 들끓고 있으니 물이 깨끗할 리 없고 물이 더러우니 물을 마시고 배탈이 멈추는 날 역시 없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인데 아름답게 볼 수 없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슬픈 걸 슬프다고 느끼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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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작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한다는 게, 그게 문제다. 문제는 늘 가까이 있다. 문제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에게 있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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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할까. 아니 한 달에 몇 번, 일 년에 몇 번이나 할까. 평생 몇 번이나 할까.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랑이라는 게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건 모른다. 사랑인 척할 뿐이다. 사랑이라는 건 본능 같은 것으로 강아지가 주인을 향한 맹목적인 그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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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날을 벌리고 봄이 들어왔다. 12월인데 마치 4월의 봄날 같다. 아지랑이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부옇고 봄눈이 내릴 것 같은 날이다. 사람들의 옷들도 얇아졌다. 패딩을 입고 다니면 더울 날이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한 건 필시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요컨대 오래전에 지구에 들어온 외계인들이 더 이상 지구의 온도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자전공전 해수 같은 것들을 변화시킨다거나. 이건 피시 초자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빛의 굴절이라든가 말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을 한 번 겪었다. 학창 시절이었다. 다락방이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파리가 불빛의 밑, 다락방 벽에 붙었다. 나와 파리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멍하게 파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리를 보는데 뭐랄까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었다. 마치 나의 존재가 나의 몸에서 분리되어 우주로 떠 내려가는 듯한 기분. 나는 한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파리를 쳐다보았다. 가만히, 전혀 미동 없이, 나는 내가 돌이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장만 미약하게 뛰었고 나머지 모든 세포는 멈추었다. 사실은 그 정도로 꼼짝 않고 파리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20분쯤이었을까. 파리가 느닷없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나는 그때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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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어서 인형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인형의 주머니에는 쪽지가 있었다. 그 쪽지에는 이상한 글들이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읽었다. 그 뒤로 나는 슬래피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슬래피는 나 이외에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어 했다. 슬래피는 까끔 무서운 얼굴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슬래피는 질투를 하고 화를 냈다. 슬래피는 친구를 많이 가지려고 하면서 나는 친구가 슬래피 이외에 더 있으면 안 된다. 나와 친해지는 친구들은 전부 슬래피가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쪽지에 적힌 주문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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