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앞 선 편지 이후에 틈이 있었습니다. 찬란한 계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자연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찰랑거리는 물결에 반사되는 빛의 실루엣에 그만 나 자신을 놓아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려 해서 아차 당신에게 편지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 예전의 온화한 미소로 나의 편지를 꼼꼼하게 읽겠지요.
얼마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었던 소설을 자꾸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더 좋다,라는 것보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겁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츠비는 그런데 정말 위대한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마지막 장면은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시작 같은 분위기입니다. 정말 쓸쓸하고 삭막하고. 그러면서도 수영장에서 데이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했을까.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을 피츠제럴드는 원래 개츠비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와 젤다의 권유로 위대한 개츠비로 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피츠제럴드는 그저 개츠비로 하고 싶었습니다. 개츠비는 위대할까. 어쩌면 개츠비가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에는 데이지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이지를 위해 5년 동안 블랙사업 같은 것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 것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하기로 한 것에는 개츠비가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죽음을 생각합니다. 아니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합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 어쩌면 그 무의 상태를 느끼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Zilch상태가 되어 허공에 먼지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살아 있을 때 이런 공허와 상태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로 돌입하려고 긴 시간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죽는다는 것, 받아들이면 괜찮아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주위의 죽음을 많이 봤지만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 분명 거대한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면 뭐 어때 같은 마음이 듭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되 이미 자신을 놓아버린 상태가 된 사람들 말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내몰린 상태 말입니다. 벼랑 끝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보다는 떨어져 죽음으로 가는 포기를 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뇌가 죽음을 두렵지 않게 변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은 죽음을 멀리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죽지만 나 자신은 그 죽음에서 배제합니다. 그런데 외부의 인해 뇌에서 어떠한 물질이 흘러나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죽습니다. 죽고 난 후에는 아름다운 육체 따위는 없습니다. 박제는 박제대로 이상한 형태입니다. 육체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썩어 갈 뿐입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죽고 나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품도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망가지고 사라집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는 건 계절입니다. 그 계절을 움직이는 건 시간입니다. 시간은 계절을 순환시키며 반복케 합니다. 계절은 한 번 죽지만 일 년 뒤에 다시 태어납니다. 그 순환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지냅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당신과 제가 좋아했던 문구입니다.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서니의 런이라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찾았던 인생의 페이지 오늘은 어떻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Sunnie - Run https://youtu.be/mNkcq8zQjC0?si=qyBu-K2bVJO2Ms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