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오늘이 일요일이고 시험이 내일인데 시험공부는 하기 싫고, 시간은 계속 가고 공부는 해 놓은 게 없고. 독서실을 끊어 놓고 내일 시험 칠 거 밤새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시간이 가는 게 내내 불안했다. 그렇지만 아직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고 친구와 한 시간만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공부를 해야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9시가 되었다. 친구는 집에 가고 10시부터 공부해야지 생각하며 소설이나 읽었다. 시간이 가는 게 불안했지만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 양립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책상이 앉은 시간이 11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책을 펼쳐 놓고 하루 종일 시험범위 내 공부를 하면 어째 어째 되겠다 싶었는데 책상에 앉아서 멍하게 있다가 오전이 지나가 버렸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공부해야지. 그러나 오후가 금방 되어 버리고 한 과목은 포기하게 된다. 저녁이 되면 요즘 정리만 공부하자 그러면 60점은 맞을 것 같다.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나와 타협을 하느라 아버지가 구워주는 삼겹살의 맛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는 삼겹살이 최고였다. 특히 아버지가 구워주시는 삼겹살.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시험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하루를 그냥 보낸 것 때문에, 또 나는 나와 타협을 하느라 그 맛있는 삼겹살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자정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펼쳤는데 그때부터 머릿속은 온통 상상의 세계.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책 속의 빽빽한 글자가 보일 뿐이었다. 시간은 새벽 두 시. 몇 글자 공부를 하다가 그냥 내일 커닝이나 하자. 아니다 내 주위에 앉은 놈들은 커닝해 봐야 점수가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이번 시험은 포기하지 뭐. 그렇게 새벽을 맞이하고 독서실 책상의 불빛이 확 밝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저녁 시간의 기분. 시간이 가는 게 싫지만 빨리 시간이 갔으면 하는 기묘한 마음. 그런 예전의 기분을 오늘에 저녁에 느꼈다. 기시감이 이렇게나 강하게 느껴지다니.


예전에는 아버지가 늘 가는 식육점에서 삼겹살을 사 오셨다. 그 동네에 가면 아직도 식육점이 깔끔하게 단장을 해서 장사를 하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내 입맛은 냉동 삼겹살 쪽으로 기울었다. 삼겹살은 소주와 함께 먹지만 잘 구워진 냉삼을 뜨거운 밥에 싸서 먹는 맛에 빠져들었다. 가격도 저렴하니까 좋았다. 오랜만에 냉삼을 방울토마토와 함께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구웠다. 구우면 다 맛있다.


가열하면 분자구조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다 맛있어진다. 맛있게 먹는 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일단은 맛있게 먹고 보자는 식이 되어 버린다. 살이 찌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체는 더 이상 영양가 듬뿍 들어있는 음식은 필요 없어!라고 하는데 뇌가 음식을 먹었던 행복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계속 서번트 물질을 뿜어내서 자꾸 꼬신다. 그러면 결국 설득당하게 된다.


도파민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운동해야지라고 마음먹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나기를 한 달 정도 한 다음에, 어느 날 주말 아침 알람 소리를 듣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나려다 다시 누웠는데 평소보다 더 잠이 달콤하고 침대가 포근하고 푹신한 것이다. 그때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이 평소의 두 배가 된다고 한다. 뇌는 그 느긋함, 편안함, 편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도파민의 중독이라는 건 의지로 쉽게 무너뜨릴 수가 없다. 도파민의 맛에 가장 쉽게 빠져는 게 맛있는 음식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먹방, 맛있는 음식 프로그램은 온통 자극적인 음식들뿐이다. 그건 분명 몸에 좋을 리 없다. 연예인들이 매일 그렇게 먹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이라는 게 그들을 그렇게 보이게 만든다. 우리 같은 일반인처럼 매일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서는 부예 보여야 하는 티브이 속 브라운관 속에서 날씬하게 보일 수가 없다. 보이는 먹방에서 우리는 연예인들의 진실의 미간에 혹 해서 튀기고, 끓이고, 굽는다. 맛있게 먹는다.


괜찮아, 닭은 살 안 쪄! 그래 맞는 말이지 닭이 살이 찌는 건 아니지 먹는 사람이 살이 찌는 거야.


우리도 진실의 미간을 만들자. 마트에 가면 친정한 봉투 팩에 냉삼이 곱게 들어있다. 프라이팬에 김치를 넣고 지글지글 굽다가 삼겹살을 넣고 방우리를 넣고 굽는다. 삼겹살과 김치가 익어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가히 환상적이다. 맥주와 먹어도 좋지만 뜨거운 밥에 올려 고로 씨처럼 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고 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밥과 함께 먹고 나면 배가 빵빵하니 배부른 포만감이 드는 순간 후회를 한다. 분명 후회할 것이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봤는데, 90살 넘어 산 사람들이 다시 예전 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하는 것에 대한 영상이다. 시간이 지나 보면 일에 대해서 대체로 후회를 한다. 못했으면 잘했으면 하고 후회를 하고, 잘했으면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 후회에도 건강한 후회가 있고 건강하지 못한 후회가 있다.


어젯밤 공원 벤치에서 그녀와 뽀뽀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집에 와서 뽀뽀만 하고 들어온 걸 후회한다. 이건 건강한 후회일까 건강하지 못한 후회일까. 인간은 지나간 일에 대해서, 시간이 꽤 흐르고 나면 대체로 후회를 한다. 살이 찌는 건 너무나 싫지만 후회가 들더라도 일단은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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