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도 주말 같지 않은 건 나이 탓일까. 아니면 평일 주말 경계 없이 하는 일의 스타일 때문일까. 이미 오래전에 주말에도 주말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릴 때 주말은 그야말로 주말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걸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웠고, 주말에는 평일보다 좀 더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요컨대 새로 구입한 전기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구워서 마당의 평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면 옆 집에서도 고기냄새에 이끌려 나와서 다 같이 앉아서 먹기도 했다. 주말이라 다 같이 평상에 앉아서 고기를 구워 밥을 먹으며 어른들은 술잔도 기울였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마당의 주인이었던 깜순이도 신이 나서 마당을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밤이 깊어지면 옆 집 아주머니가 해주는 귀신 이야기에 몸 둘 바를 모르기도 했다. 웍! 하는 소리에 우리는 꺄악 하는 소리를 내고 벌벌 떨었다. 주말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평상의 양 끝으로 모기향을 피웠다.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냄새는 이상하지만 좋았다. 모기향 하나가 다 꺼져갈 때면 관아, 모기향, 하면 내가 알아서 하나를 더 불 붙였다.
분명 방학이라 평일 주말 개념이 없을 텐데도 주말에는 주말 만의 분위기가 집 안에 가득 있었다. 밤공기도 주말이라 달라 보였다. 주말에는 주말에만 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름이니까 주말 저녁에는 특집 공포물이 나왔다. 더울 텐데도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당겨 티브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귀신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일요일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슬슬 주말이 지나간다는 생각에 남은 일요일 오후를 더 열심히 놀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처럼 주말 만의 기분을 만끽할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은 요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요즘에도 일요일 오후 2시가 지나면 이상하지만 허 한 기분이 든다. 주말에도 주말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던 때는 여행이나 서울에 놀러 갔을 때였다. 예전에는 일 년에 두 번씩 서울에 갔다. 백남준 아트 센터에 가기 위해 나는 상경을 하여 며칠씩 머물다 오곤 했다. 그럴 때 주말이 껴도 주말 같지는 않았다. 집에서 보내는 주말과 다르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대학교 때는 신림동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서 낮동안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친구 알바하는 곳에서 일을 도와줬다. 일 마치고 사장님에게 얻은 순대와 고기로 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친구는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낮에는 신림동 분식집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순대타운에서 알바를 했다. 새벽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잠이 와서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로비에서 잠을 잤다. 잠에서 일어나 보니 친구는 없고 나는 환자 가족인 양 어물쩍 병원에서 세수를 하고 부천에 있는 작은 이모댁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부족한 잠을 잤다. 이모는 나에게 작은 딸냄 방에서 자라고 했다. 당시 이모의 아파트는 60평인가 어리어리해서 방도 더 있는데 작은 딸냄 방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모에게는 딸만 둘인데 침대가 너무 깨끗해서 마구 어지럽히며 잠들기 미안하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뻗어서 잠들었다.
또 하루는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첫 지하철을 타고 1호선을 타고 끝까지 가면서 잠을 잤다. 어느 날은 지옥철을 보여준다며 이른 오전에, 가장 바글바글한 시기에 친구는 나를 지하철에 태웠다. 사람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하하 죽는 줄 알았다. 사람에게 끼여서 밀려 지하철에 올라탔다. 친구는 적응이 되었는지 그 속에서 잘도 버티고 서서 한 손으로 문고본 책을 읽었다. 서 서울에는 역시 능력자들이 많구나.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그저 나온 영화가 아닌게벼.
주말이어도 주말인지도 모르게 돌아다녔다. 어떤 해에는 과천에 갔다. 주말이었다. 주말에만 경마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경마장은 대단했다. 입구부터 출제 예상 문제집을 팔고 그날 달리는 말도 미리 구경할 수 있었다. 본다고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모여들어 말들의 상태를 살폈다. 돈을 거는 방식이 세 가진가, 그렇게 있었다. 단승식, 복승식 또 뭐 있는데, 아무튼 가장 기본 액수로 걸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와 콘서트장은 저리 가라였다. 어마어마한 인구가 빼곡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경마가 시작되고 말들이 골인 지점으로 들어올 때는 사람들의 어우우 하는 소리가 우뢰처럼 들렸다. 사람구경은 역시 재미있다.
그날 경마장을 나와서 미술관과 동물원을 구경했다. 춘희의 그 오오오오오 맛있어 하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재미있게 봐서 동물원과 미술관을 다 갔다. 그때가 오월의 나른한 오후였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이 죄다 낮잠을 자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역동적인 모습을 딱 본 게 하마였다. 하마는 낮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쪽으로 엉덩이를 돌리더니 똥을 엄청나게 싸질렀다. 하마는 똥을 싸지르면서 꼬리를 모터 달아 놓은 것처럼 흔들어 재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똥색이 녹색이었다. 초 역동적이었다.
신기했던 건 낮잠 자는 표범 우리 밖에 고양이가 배를 보이며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개미핥기 가까이서 본 게 동물원을 돌아다녀서 본 게 다였다. 나와서 점심을 사 먹고 미술관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미술품이든, 사진이든, 조각품이든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지 모른다. 백남준 아트도 그렇다. 뭐 알지도 못하는데 나는 백남준의 세계에 깊게 빠졌었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갈 수 없으니 방학에 몰아서 가곤 했고, 대학교 졸업 후 몇 년 동안 그런 일들이 계속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 뚝 끊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이라는 기분도, 주말이 되었지만 칼로 잘려 나가 버린 것 같다. 라디오를 들으니 어떤 집에서는 주말마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 캠핑을 간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주말을 몹시도 기다리지 않을까. 아이 때에는 집 거실에 텐트를 쳐놔도 마치 우리만의 아지트에 온 것 같아서 재미있는데 캠핑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날씨 탓이다. 날씨 때문이야. 날씨가 그래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