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가고 난 후의 도시는 그야말로 뜨거운 습도로 가득한 찜통이다. 대기에 가스층이 이렇게 두텁고 짙게 껴 있는 날들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조깅을 하려고 강변으로 나가면 습 하면서 무겁고 질척이는 습도가 입 안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오늘은 절대 외출을 삼가라는 오후 2시에 조깅을 했다. 너무나 바싹한 햇빛에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질 것 같았다. 움직이면 땀이 났고, 달리니까 땀이 줄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산스장에는 멋지게 기구를 드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운동의 맛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고통의 참맛을 안다. 아무튼 해가 가장 이글거릴 때 두 시간 정도 조깅 겸 걷고 몸을 풀었다. 달리는데 사람들이 저런 미친놈을 봤나 같은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그래서 별로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조깅하기에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달리자마자 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평소에 흘릴 수 없는 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이 나쁘지 않아서 괜찮다. 폭염이 오는 여름에 늘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 조깅을 하고 나면 저녁에 부는 덥덥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아니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 앞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너무나 덥덥하고 답답한 자연의 바람이겠지만 땀을 듬뿍 흘리고 맞이하는 자연바람은 시원하다. 거기에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바닷가에 부는 바람이 그렇게 덥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십 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나왔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매년 여름에 그런 말은 늘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체감상 다른 해들과 좀 다르다. 어쩌면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기록적인 폭우에 들끓는 도시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UN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7월 27일 자로 지구 온난화는 끝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끓는 지구의 시대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각 나라에서 폭우와 폭염으로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고 사망하는 수도 늘어가고 있다. 사무총장은 공식적으로 이를 보며 두렵다고 표현했고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매년 여름이 더웠는데, 매일 일상을 기록하다 보니 작년, 재작년 여름에 적어 놓은 글을 보면 그때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써놨다. 특히 2021년도 이맘때에도 너무나 더운 폭염에 코로나가 한창이나 늘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더위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자주 왔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더위가 몰려와서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조깅을 하기 때문에 강변으로 나가 달렸다. 신나게 달렸다. 한 20분 정도 달렸을 때 내 앞에서 달리던 남성이 느닷없이 쓰러졌다.


남성을 약간 그늘로 옮기고 119를 부르고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괜찮으니 갈길을 가라고 하고(그래봤자 구경한다고) 119가 도착하는 도로와 강변이 좀 떨어져 있어서 도로에 올라가서 119 구조대원들을 데리고 오고. 아무튼 그때 코로나 기간이라 119 구조대원들은 그 무더위에 방역복까지 껴 입어서 아우 정말. 그날 흘렸던 땀이 정말 한 바가지였다. 그때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


요즘은 달리고 있으면 달이 따라온다. 그래서 달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밋밋한 하늘에 달이 떠 있으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달은 루나틱과 인세인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키의 일큐팔사에도 나오지만 서양의 달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인세인은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고 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루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라 오래전 서양에서 루나틱은 달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달에게 넘기기도 했다.


이번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6에서 4화 ‘메이지 데이’에 그런 이야기를 잘 그려냈다. 주인공으로 데드풀 2의 재지 비츠가 나온다. 기생거머리 파파라치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더러운 짓에 넌덜머리를 내고 그만두다가 슈퍼스타인 메이지 데이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하다가 약물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파파라치들과 카메라에 담는다.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파파라치들은 특종이라며 사진을 담으면서 점점 메이지 데이 곁으로 간다. 그때 달이 뜨며 메이지 데이가 변한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짧은 영상 속에 잘 담아냈다.

조깅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떠 있다. 달은 어제의 그 달이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은 어제의 그 구름이 아니다. 심지어 1분 전의 구름에서도 벗어났다.


달이 떠 있으니 하늘이 밋밋하지 않다. 그래서 달이 뜬 요즘의 하늘은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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