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강변을 한 시간 반 정도 달린다. 그날도 비소식이 있었지만 약간 내릴 거라는 소식을 보고 강변으로 나갔다.


레인시즌이라 흐렸지만 보통의 흐린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구름이 많고, 7시 정도에는 아직 여름 해가 떠 있어야 하는데 해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도 강변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했다.


그러고 강변을 달리는데 10분 만에 하늘이 거뭇하게 변했다. 확 어두워졌다. 방안의 스위치를 내려 버린 것처럼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런 어둠은 밤이 되어 자연스럽게 내리는 어둠이 아니라 정전이 된 것처럼 느닷없는 어둠이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어둠, 이런 갑작스러운 어둠은 무서움을 준다.

그러더니 쿠쿵하는 천둥소리가 몇 번 크게 들리더니 천지개벽하는 소리로 바뀌어서 여러 번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천둥소리가 초단위로 들리고 하늘이 번쩍번쩍 거리는 게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강변으로 나온 어머님들도 너무나 놀라서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왔다. 우산을 쓰는 것도 의미가 없고, 비를 피하려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비가 사선으로 쏟아졌고 비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무엇보다 1분에 몇 번이라도 들리는 천둥소리와 번개가 너무 무섭게 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속에 있어도 마치 고립이 된 것 같은데 산속에 있다가 이런 꼴을 당하면 아마 심장이 펌프질을 엄청나게 할 것이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가, 정말 비가 세숫대야로 퍼붓는 것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퍼붓는 비가 30분 정도 지속되었다. 30분이라고 하지만 그 30분은 정말 공포였다. 비를 피하던 한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는 그렇게 오래 내리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꾹 참고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두 명의 아주머니와 한 명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전부 거세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무서워서 가버리고 말았다. 혼자 있으니 정말 고립된 것처럼 무서웠다. 보통 조깅을 할 때 휴대폰으로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 놓고 주머니에 넣어서 달리는데 빗소리와 천둥소리 때문에 노랫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를 가장 공포스럽게 하는 건 번개였다. 이렇게 어두운데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번개가 천둥소리를 동반해서 분당 여러 번 빠지직거렸다. 천둥소리는 작년에도 들었고, 매년 들었다. 태풍이 오면 천둥소리는 따라온다. 그러나 이렇게 플래시가 뛰어다닌 것처럼 지속적으로 빠지직하는 번개는 이 도시에 살면서 처음 봤다.

그렇게 30분 정도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다리도 다 젖고 얼굴도 축축하고, 그럼에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팔 굽혀 펴기를 좀 하고 스쾃 같은 것들을 했더니 땀도 엄청났다. 비가 올 때 치던 번개는 세상을 그저 번쩍 하며 밝게만 했는데 비가 그치고 저 먼 하늘에서 빠지직하며 내려오는 번개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번개가 빠지직 저 멀리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옆의 구름으로 가더니 거기서 터져버렸다. 그러다가 몇 분 후에 또다시 거짓말처럼 등장해서 빠지직 굉음과 나타나더니 천지창조를 보는 것처럼 하늘에 흔히 볼 수 없는 컬러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자줏빛을 띠는 빛은 크툴루 신화를 탄생시킨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빛의 색채가 아닌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조엘리 리차드슨이 나온 영화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를 보면 이런 색채의 빛이 등장한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우주에서 온 색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국의 대학교 문학에 관련된 학과에서는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에 관련된 단편 쓰기도 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색채에서 괴기하고 괴랄함을 느끼게 하는 공포를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했는데, 당시 망가져서 회생불능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선택한 영화치고는 괜찮았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에서 온 색채, 지구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기묘한 색채의 빛, 그 자주색을 띤 빛이 바로 저런 번개에서 내뿜은 색채의 빛이었다. 나는 정말 불안해서 무서웠지만 폰을 들고 번개가 치기를 기다렸다가 셔터를 마구마구 눌렀다. 그러다 보니 흔들리고 말았다. 이럴 때 정말 좋은 폰이었다면, 최신 폰이었다면 제대로 잡아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황홀하면서 무섭고 불안했던 건 저 멀리서 마지막일듯한 번개가 대폭발 하는 번개였다. 바닥으로 떨어져서 빠직하는 순간 자줏빛이 폭발을 했다.  이 정도 번개는 내가 요즘 올리고 있는 번개를 다섯 번이나 맞는 주인공도 그대로 골로 가버릴 것만 같다. 덜덜덜.

번개와 비도 그친 이 시간쯤이 저녁 8시 정도 된 시간이다. 8시는 밤이다. 밤인데 낮처럼 빛으로 불 밝히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어둡지 않아야 할 시간에 느닷없이 어두워지고 어두운 밤이어야 할 시간에 낮처럼 빛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니 앞으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크다. 덜덜덜.


한 시간 정도 자연은 온갖 무서움을 대동해서 인간들에게 맛보기를 보여준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돌아갔다. 그래서 자연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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