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날이 지속되고 굽굽하고 더울 때 식은 밥으로 볶음밥을 해 먹는다. 볶음밥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다 넣어서 볶으면 된다. 나는 모든 음식에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먹기 때문에 역시 볶음밥에도 방우리(방울토마토)를 왕창 넣었다. 숟가락으로 속을 파보면 안에 방우리가 가득하다. 뜨거운 방우리를 터트리면 토마토의 즙이 나오는데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김치를 넣을까 하다가 김치자체로 맛있어서 김치는 넣지 않았다. 김치를 넣어서 볶으면 말 그대로 김치볶음밥이 된다. 집에서는 거의 뭘 잘해 먹지 않지만 이렇게 찬밥이 있고 공기가 눅눅하고 그러면 밥을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다. 거기에 김치를 넣어서 김치볶음밥으로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다.


김치볶음밥 하면 대학교 때 학교 근처 분식집 생각이 난다. 거기 분식집 김치볶음밥이 내 스타일이었다. 김치가 들어가서 벌겋게 볶였지만 맵지 않은, 버터맛이 살짝 나면서 뜨거운 김치가 아삭아삭 씹히는 그런 맛.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면 친구들은 집에서도 늘 해 먹을 수 있는 김치볶음밥은 왜 주문하느냐, 우리처럼 분식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쫄면이나 칼국수를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집에서 엄마가 아무리 김치볶음밥을 해줘도 분식집에서 만든 김치볶음밥 같은 맛은 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김치볶음밥이야말로 분식집에서 먹어야 하는 메뉴다.

바보들.

아무리 맛있는 거 먹어봐라 나중에 김치볶음밥 먹었던 것만 기억이 날 걸. 흥.


집에서 온갖 재료를 다 넣고 김치볶음밥을 해도 분식집 김치볶음밥 보다 못하다. 분식집 김치볶음밥은 김치만으로 볶음밥 해서 그 위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린 것뿐인데 이상하지만 맛있다. 김치볶음밥은 하얀 플라스틱 접시 위에 담겨 있고 참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숟가락으로 계란 프라이를 잘라 김치볶음밥과 함께 한 숟가락 가득 먹는 맛. 그리고 딸려 나온 계란국을 한 모금 떠먹는 맛까지 더 하면 김치볶음밥의 완성이다. 반찬으로는 단무지가 어울린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만 판다. 동네 분식집에 가면 김치볶음밥이 다 있다. 좀 있어 보이는 식당에는 김치볶음밥은 없다. 김치볶음밥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 음식, 흔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하찮은 음식이라 요리로 취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학생 때 종종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 먹었던 김치볶음밥은 어른이 되어서는 먹지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나지만 주위에 먹을 게 널려 있으니 김치볶음밥 따위는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치볶음밥은 오늘도 어떤 분식집에서는 학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있을 것이다.


볶음밥은 아이들에게 인기 좋은 음식이다. 친구들과 집에 가면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볶음밥을 다 같이 앉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음식이라는 건 혼자서 먹으면 끼니를 때운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여럿이서 먹으면 식사시간을 즐긴다는 의미가 된다. 볶음밥은 당당하게 중식당에도 테이블에 오르고, 뷔페식당에서도 있지만 김치볶음밥은 동네 분식집에 가야 먹을 수 있다.


가끔 조깅을 하며 오다가 동네 분식집에 앉아서 김치볶음밥을 먹는 아저씨의 등을 볼 때가 있다. 김치볶음밥을 정말 좋아하거나 추억을 맛보고 싶어서 왔을지도 모른다. 전자의 경우는 잘 없다. 어른이 되면 김치볶음밥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학창 시절에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 때문에 동네 분식집에 앉아서 먹고 있을 것이다.


조깅을 매일 하다 보니,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여러 동네를 지나쳐 오는데 코로나 전에는 많았던 동네분식집들이 대체로 사라졌다. 그 말은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줄어들어간다는 말이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면서 땀을 듬뿍 흘렸으니 김치를 왕창 넣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어야지.


어제는 김치볶음밥 해먹을 생각에 조깅하러 나왔다가 폭우에 천둥에 번개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날이었다. 비가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20분을 쏟아지더니 살면서 처음 듣고 보는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번개가 칠 때 휴대폰 셔터를 눌렀는데 와 대단한 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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