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는 3집이 제일 좋다. 찬란하고 화려한 꽃처럼 김건모 3집은 정말 최고였다. 모든 노래가 이토록, 전부 대 히트였다. 첫 시작의 ‘아름다운 이별’부터 ‘드라마’를 지나 ‘잘못된 남만’을 거쳐 ‘겨울이 오면’까지.


그런데 김건모 3집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상하다, 꼭 그렇다. 늘 넣어두는 곳에 같이 우르르 넣어 뒀는데 찾아도 없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꼭 사라지는 물품이 있다. 한때 그렇게 나에게서 사라지는 물품이 립글로스였다.


요즘은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쳐발쳐발하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겨울에만 입술이 메말라서 그때만 바르고 다녔다. 보통 두 개 정도를 구입해서 하나는 집에, 하나는 일하는 곳에 두고 열심히 발랐는데 어느 날 보면 꼭 사라지고 만다.


마치 립글로스 공장에서 반 정도 사용하면 알아서 없어지는 장치를 심어 놓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매년 그렇게 립글로스는 사용을 다 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립글로스가 요즘은 바닥이 보일 때까지 사용을 한다. 대신 이렇게 가만 두었던 김건모 3집 앨범이 사라지고 만다. 하루키의 오래된 버전의 책들이 다 있는데 사라진 것들이 있다.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우산이 그럴지도 모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양말이 그럴지도 모른다. 팬티가 그런 사람이 있고, 휴대폰이 그런 물품에 속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휴대폰이 그렇다면 참 난감하다. 휴대폰이 도망가 버리면, 아아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휴대전화기도 물품이라 없어져도 이상할리 없지만 없어지면 정말 주인은 정지 상태가 되어 버린다. 모든 걸 휴대폰에 넣어두기 때문에 없어지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일시정지가 된다. 우리는 휴대폰을 맹신하고 있다.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나는 절대 잃어버릴 리 없다고 생각까지 하고 있다.


아직 나는 한 번도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없지만 내일이라도 도망갈지 모른다. 물품이니까. 발이 달린 것도 아닌 것들이 도망을 간다. 휴대폰은 비번을 풀 때 초기처럼 숫자를 눌러 푸는 게 지문이나 눈동자인식으로 푸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개인의 정보가 깡그리 담겨 있는 이상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누군가에게 잡혀가서 기절을 당했을 때 휴대폰을 풀 때 나쁜 놈들이 지문이나 눈꺼풀을 억지로 까뒤집어서 폰의 비번을 풀 수 있지만, 숫자로비번을 풀어야만 한다면 쉽게 풀지 못한다. 주인인 내가 깨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직접 누르거나 알려주지 않으면 폰을 절대 풀 수 없다.


아무튼 김건모 3집은 여러 날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김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악독한 놈들에게 걸려들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밝혀졌지만 밝혀지는 동안 김건모는 추락할 대로 추락을 했다. 그 과정에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노래도 거의 성의 없이 부르고, 무대에 그대로 드러눕기도 하고, 노래도 못 불러 팬들의 빈축을 샀다.


바로 악독한 그 놈들이 바라던 바였다. 연예인들을 구워삶을 줄 아는 놈들에게 걸린 것이다. 연예인들은 회사라는 막강한 벽에서 나오게 되면 한없이 허물어지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래성 같다. 현재까지 김건모의 마지막 모습이 공연에서 성의 없이 팬들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미우새에서도 김건모는 손을 너무 떠는 등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손을 그렇게 심하게 떠는 건 아무래도 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피곤해서 손을 떠는 것과 술 때문에 손을 떠는 건 다르다.


김건모는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무엇보다 높은 자존감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티브이에 비치는 모습에서 낯빛이 어두워지고 말 수도 적어지는 것 같았다. 방송은 편집이라는 게 있다. 사실 일박이일 같은 경우 이삼일 같이 지내면서 대게 지루하게 흘러간다. 실상은 옆에서 보기에 썩 재미있지 않다.


현실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가면 잘 알 수 있다. 캠핑을 즐기는 우리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에는 지루하게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일박이일의 새끼피디들이 붙어서 편집을 몇 날며칠에 걸려 한다. 재미있는 부분을 추려내서 이어 붙이고 음향을 넣고 자막을 달아서 보는 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려면 카메라가 많아야 한다. 전체샷, 개인샷 따로, 좌우 따로. 카메라가 많지 않으면 재미있는 영상을 편집하기 힘들다. 제작비가 많으면 카메라가 많다.


축구경기를 생각하면 된다. 월드컵 경기는 다른 나라끼리 경기를 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골대 바로 옆에서 공이 날아오는 장면, 선수들의 역동적인 장면도 드론촬영, 망원촬영, 좌에서 우로 따라가면서 촬영을 한다. 카메라가 많기 때문에 티브이로 보는 사람들도 굉장히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로 보면 역동성이 떨어진다. 카메라가 몇 대 없기 때문이다. 치열한 축구 경기가 마치 정적인 경기처럼 느껴져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늘 한 면에서 촬영하는 모습만 비추어주니 프로축구 경기가 고등학생들의 경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거쳐 한국의 프로축구 중계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만큼 카메라가 담아내야 한다. 영국 프로 리그에 돈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지 잘 알 수 있다. 월드컵 경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카메라가 경기를 담고 있어서 재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편집을 거치면 풀 죽은 김건모도 어지간하면 살릴 수 있다. 재미있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건 김건모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 닥쳤다는 것이다.


김건모도 1집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2집의 ‘핑계’가 뜨면서 걷잡을 수 없는 초대형 가수가 되었다. 김건모도 한국 가요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잘 생긴 것도 아니야, 얼굴도 까매, 키가 큰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뭐야? 이 까만 사람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1913년에 파리에서 이 곡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그 지나친 참신성을 청중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연주회장에는 고함이 터져 나오고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그 음악에 다들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연주 횟수가 거듭되면서 혼란은 서서히 가라앉고 이제는 콘서트의 인기 곡목이 되었다고 한다.


잘 생기지 않은 얼굴은 귀여운 얼굴이 되었고, 얼굴이 까만 건 건강하게 보인다고 했으며, 키가 큰 것도 아닌 건 친근했고, 몸매가 좋지 않은 것도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쉬웠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김건모 패션에 열을 올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티피코시를 김건모가 모델을 하면서 그의 인기는 더 많이 올랐다.


김건모가 예전에 티브이에서 몸매 좋은 거 그거 다 나이 들면 쓸모없다, 나처럼 매끈한 이런 몸매가 유지되는 게 나이 들어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고. 2집 앨범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난다. 2집의 첫 시작 곡도 너무나 좋다.


혼자만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숨은 보석 같은 앨범이 아닐까,라고 흔한 소리 한 번 해본다. 핑계를 부를 때 옆에서 꿀렁꿀렁 같이 춤을 추던 까무잡잡한 댄서는 김송.


혼자만의 사랑 https://youtu.be/B34o8wTSfow


핑계 영어버전으로 부르는 김건모 https://youtu.be/1nBSABl3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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