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깅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오월까지는 달이 반달의 모습이었다가 유월에 접어들어 크고 둥근달이 되었다.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백석의 시 ‘통영’에도 유월의 풍경이 잘 담겨있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유월이 되면 태양과 달의 이런저런 합의에 의해 평소보다 가까워진다. 그래서 평소에 38만?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이 거리를 좀 빠르게 쉬지 않고 걸어가면 8, 9년 정도 걸으면 달이 닿을 수 있다. 시속 100킬로로 붕 자동차를 몰고 가면 한 15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유월에는 조금 가까워진다.


그렇게 되면 달이 평소보다 훨씬 커 보이고 조수간만의 차가 달라진다. 그래서 바닷물이 한꺼번에 확 빠지고 나면 바위에 붙어 있던 수천수만의 조개가 아가리를 벌릴 때 쩍 하며 나는 소리를 백석은 조개가 울을 유월의 저녁으로 표현했다. 백석은 정말 과학과 미각과 인간의 온갖  감각을 전부 시에 잘 버무렸다.


백석 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나 예전에 어떤 곳에서 포토샵 강의 제의가 들어와서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사실 포토샵이라는 게 앞에서 아무리 주절주절 떠들어봐야 다 쓸모없다. 해보는 게 제일 좋다. 그래서 잠깐 설명을 하고 나머지는 해보게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백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느닷없이 백석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인간의 일이라는 게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무튼 귀로는 백석의 이야기를 듣고 눈과 손은 포토샵을 하면 되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다. 백석 이야기는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평과’과 자야의 ‘내 사랑 백석’에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웅얼웅얼거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포토샵을 손 놓은 채 백석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나는 그 뒤로 잘리고 말았다.


비록 그때 잘렸지만 사람들의 말똥말똥한 눈을 나는 보았다. 뭐랄까 사람들은 백석이나 윤동주나 김광섭, 천상병 같은 시인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열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누군가 도화선에 불을 지핀다면 사람들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어머니들의 가계부 구석에는 자신만의 글과 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여하튼 달과 지구가 가까운 유월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덮치기 전, 봄의 허무를 벗고 여름을 기다리는 피부 같은 야들야들 온순한 면모가 가득한 유월인 것이다. 유월에는 달과 구름을 담는 재미가 있는데 조깅하다 멈춰 서서 마냥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다가는 하루살이가 공격적으로 입 속으로 들어온다. 나도 억지로 많이도 먹었는데 정말 아무 맛도 안 난다. 벌레 맛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그냥 방구 맛이다.


오늘은 도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신호가 바뀌고는 뒤의 차가 붕 와서 나를 박아 버렸다. 쿵 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고 나의 몸은 앞뒤로 움직였으며 수동기어라 시동이 꺼졌다. 조수석의 가방이 앞으로 밀려 떨어졌고 휴대폰도 떨어졌다. 순간 나는 몸을 살폈고 자동차 시동을 다시 켜봤다. 거의 20년 가까이 조심조심 몰고 다녔는데,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그런 재미가 있는데, 이 모든 게 안 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휘몰아쳤다.


시동은 잘 들어오고 노래도 다시 잘 나오고 핸들도 잘 돌아가고 나는 내려서 뒤차로 갔는데 뒤차의 여성이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나와서 뒤처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나도 그렇고 여성도 그렇고 놀라서 발 빠른 상황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성은 보험을 불러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도로 한가운데니까 차를 옆으로 뺐다.


차 범퍼를 보니 뭔가 거의 표시도 안 날 정도로 자국이 있었다. 몸은 멀쩡하고 자동차도 그것 외에는 겉으로는 눈에 띄는 사고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아서 그냥 보험을 부르지 않아도 되니 그냥 가자고 했다. 여성은 범퍼에 자국이 있는데 보험을 불러 갈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차도 오래됐고 눈을 크게 뜨고 자세하게 봐야 보이는 자국인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여성은 뭔가 조금 의심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이 남자가 혹시 나중에?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워낙에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자동차 범퍼가 원래 방어하라고 있는 거니까 점 찍힌 것처럼 표시가 난 건 안 바꿔도 된다. 그래서 그대로 그 도로를 나오게 되었다. 여성은 그래도 모르니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어 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꼭 해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를 다시 카센터에 넣고 범퍼를 갈고 그 시간에 렌트차를 몰고. 뭐 그런 일련의 일들이 너무 귀찮은 것이다.


인간은 정말 제멋대로 인 존재라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건 귀찮지 않은데 생활에서 귀찮은 건 정말 귀찮다. 요컨대 샤워를 하는 건 귀찮지 않다. 그런데 씻는 건 너무 귀찮다. 요 앞에 걸어서 갔다 오는 건 정말 미칠 정도로 귀찮다. 일어나서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오는데 덥고,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하고, 아무튼 너무 귀찮다. 그런데 1시간 넘는 거리를 달리는 건 또 귀찮지 않다.


인스타그램의 디엠은 그렇게 귀찮지 않지만 카톡은 귀찮은 경우가 많다. 읽씹, 안읽씹 때문에 따지는 사람들이 카톡에는 있다. 같이 있으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말하기 귀찮은 사람이 있다.


여러 번 올린 글이지만 코로나가 덮치고 난 후 강변의 풍경이 세세하게 바뀐 부분이 있다. 코로나 전에는 그렇게 없던 메뚜기들이 엄청 많아졌다. 그래서 재작년에는 메뚜기를 잡아서 다리를 뜯어가며 노는 초딩들이 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78


그리고 비가 와도 우산을 쓰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 아마도 코로나 덕분에 집에만 있어서 살이 쪄서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지렁이가 많아졌는데 조깅코스에 굵고 긴 지렁이가 일이십 마리가 아니라 오십 마리씩 달리는 코스에 나와서 꼬물꼬물 거어 다닌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37


또 11월 겨울에도 아직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지 않은 뱀들이 똬리를 틀고 강변에 나타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뱀 하면 천경자 화백의 뱀 그림 ‘생태’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서른다섯 마리의 뱀이 서로 몸을 섞고 있다. 환상적이고 애틋하다. 천경자는 뱀을 그리는 여자다. 뱀은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천경자는 그럼 뱀을 닮았다. 독하면서 아름다운, 미끌거리면서 축축하고 팔과 다리가 없음에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


바닷가에 살고 있어서 인지 바다의 수평선을 보면 뱀을 닮았다고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는 바다는 뱀과 같다. 팔다리가 없어도 불평 한 번 안 하잖아. 늘 어딘가 숨어 지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나 현재에도 증오와 미움을 잔뜩 받고 있는 존재. 바다와 뱀의 공통점이지.


그리스 신화에서도 바다는 늘 인간을 괴롭히는 광대하고 육중한 증오의 대상으로 나왔지.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의 컵에 새겨진 사이렌만 봐도 알 수 있지. 사이렌은 예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뱀 꼬리를 가지고 있잖아. 그 예쁜 얼굴로 선원들을 현혹시켜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잖아.


차가운 겨울의 햇살을 튕겨내는 바다의 실루엣은 마치 뱀의 체강을 뒤덮고 있는 비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다. 매혹적이며 은근하다. 몸을 이루고 있는 색감은 인간의 인공적인 붓질로는 표현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보고 있으면 그 컬러의 매혹에 빠져들 것이다. 우울할 때 키리코의 그림을 보자. 그러면 깊은 우울을 느끼고 나면 괜찮아지듯 팔다리 없이도 고개를 들고 어디든 스르륵 가는 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뱀에게 다가가기를 꺼려한다. 오히려 뱀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에도 뱀을 보면 돌을 던지려고 한다.


천경자는 그런 뱀을 그렸다. 그런 뱀을 닮은 여자다. 생태를 보자. 생생하고 감동적이니까. 뱀이니까. 수평선 너머 이어지는 바다는 뱀의 몸통과도 비슷하다. 쥘 르나르가 뱀에 대해서 그랬다지 “너무나 길구나.” 뱀은 자신의 독 때문에 인간처럼 말이 많지 않다. 바다를 조금 멀리서 보면 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독하며 품고 다니는 독이자 치유제인 그 액체를 마음만 먹으면 내 몸에 수혈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생태에 대한 이야기는 말이야, 천경자 화가가 생태를 그렸을 때 “뱀을 그리는 여자가 나타났다”였다.


남은 유월은 덜 귀찮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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