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소주가 한 잔 당기는 날이라 돼지찌개를 한 번 끓였다.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게도 물 넣고, 호박 넣고, 두부 넣고, 파 넣고, 양념 넣고 돼지고기 넣고 끓이면 된다. 너무나 간단하다. 뭐 국 간장? 고춧가루? 같은 건 넣지 않는다. 간을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경험상 대충 이렇게 끓이면 어느 정도 맛있기 때문에 그냥저냥 맛있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붙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돼지고기 부위를 잔뜩 집어넣으면 된다. 딱 저렇게 비계가 붙은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 때문에 돼지찌개가 끓으면 맛이 좋다. 숟가락으로 밑바닥을 훑으면 두부가 잔뜩 들어있어서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지며 후후 하며 먹으면 된다.


이런 마이너 급의 비교적 저렴한 돼지찌개 집이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 집의 단골(까지는 아니지만)이었다. 그 돼지찌개 집은 좀 기묘해서 손님의 98%가 남자손님이었다. 2%는 뭐냐? 2%는 남자친구를 따라온 여자 손님이었지만 일단 한 번 와서 먹고는 대부분 다시는 오지 않았다. 허름한 식당으로 새시로 된 여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오래된 형광등이 아슬아슬 달려 있는 집이었다. 아슬아슬한 형광등만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돼지찌개 집주인이었다.


돼지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썩 좋은 고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돼지찌개 집에서 돼지찌개를 먹는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돼지찌개 안에 고기가 상당했다.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거짓말 좀 보태서 국물보다 고기가 더 많았다. 땀을 흘려가며 건져 먹는 맛이 좋았다. 비계에서 흐른 기름이 찌개에 떠 있어서 더 맛있었다.


풍채가 좋고 늘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고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식당을 했는데 4인용 식탁이 4개가 전부였다. 여자들은 좋아할 만한 분위기의 식당은 아니었다. 하지만 98%가 남자손님인 데에는 그 이유가 명확했다. 춥고 배고픈 겨울에는 정말 좋은 식당이었다. 매콤한 돼지찌개를 퍼서 밥 위에 올려 후룩 먹는 맛이 좋았다. 몸도 데워지고 배도 불렀다. 그러나 여름에는 못 갈 곳이었다.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가 있었지만 여름의 그 찜통 같은 더위를 식혀주지 못했다. 그런 식당이라 손님이 없을 것만 같은데 땀을 뻘뻘 흘리며 돼지찌개를 먹는 남자 손님들은 늘 있었다. 테이블이 4개가 전부라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만약 여름에 남자친구를 따라왔다가는 화장이 전부 홀라당 지워질 정도로 땀이 나고 입은 옷이 땀 때문에 엉망이 되기 때문에 여자 손님들은 오지 않는 집이었다. 주로 남자손님들, 그것도 20대 남자 손님들이 많았다. 식당이 꾸질꾸질하고 초췌해서 어디 바닷가 외진 곳에 있을 것만 같지만 아주 번화한 다운타운의 뒷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식당으로 그런 식당들이 도시마다 있다. 그리고 다운타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남성 보세 옷 가게나 신발타운, 휴대전화 파는 곳에서 일하는 남자들, 피시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젊은 남자 직원들이 돼지찌개 집의 주 손님이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작은 골목으로 들어와서 담배를 한 대 맛있게 피우고 돼지찌개 집으로 들어와 배부르게 먹고 갔다. 가격이 저렴했고 밥은 원하는 대로 퍼 먹을 수 있었다. 한 명이 와도 국밥처럼 돼지찌개 일 인분이 되었는데 두 명의 양이나 한 명의 양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녁이면 돼지찌개에 소주를 마시는 근처 젊은 손님들이 있었다. 눌러앉아서 오랜 시간 마시는 게 아니라 밥을 먹으며 소주를 반주로 후루룩 먹고 나갔다.


우리는 여름에는 가지 않았지만 추운 날이면 가끔 가서 돼지찌개를 먹곤 했다. 이상하지만 썩 맛있지 않은데 맛있었다. 겨울에 가서 보면 자리가 꽉 차서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였지만 자리가 비면 얼른 가서 앉아서 돼지찌개에 밥을 먹었다. 메뉴도 돼지찌개 달랑 하나다. 참 희한한 식당이었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굽은 등으로 돼지찌개를 팔았는데 어느 순간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 골목은 그런 식당이 죽 붙어있는 골목인데 돼지찌개 집이 문을 닫은 후로 다른 식당도 점차 사라졌다. 중간에 코로나가 끼면서 골목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저렴하게 음식을 만들어 팔던 식당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조금 없어 보이고 덥고, 조금 춥지만 하하 호호 뭐 이런 소리가 가득했던 식당들이었다. 그때에도 물가가 올라서,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할머니는 너네 먹을 만큼 먹고 가,라는 식이었다. 불과 몇 해 전의 일인데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오늘의 선곡은 돼지찌개 집에서 티브이로 많이도 봤던, 하염없이 눈물이 나~~ 제아의 후유증이다. 라이브 너무 잘 하는 거 아니야. https://youtu.be/YySS1GOlW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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