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나오니 복도에 짜파게티 냄새가 퍼져있다. 어느 집에서 끓이는 것일까. 너무 냄새가 좋다. 이 냄새는 물을 찰방 하게 남겨서 스프를 넣고 팔팔 끓여서 짜장소스가 면 깊숙이 밴 짜파게티의 냄새다. 면이 타지 않고 졸아 들어서 입 안이 온통 짜장으로 물결을 이루는 그 냄새다. 짜파게티에는 김치가 필요하다지만 단무지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전에 짜파게티 생각을 뇌 속 깊이 각인을 한 후 저녁에 조깅을 하면서 오늘은 짜파게티를 먹으리 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렸다. 짜파게티는 집에 늘 한두 개는 있다. 나는 공복에 조깅을 한다. 뭔가를 먹고 조깅을 하면 당연하지만 먹은 음식이 다 소화가 되어 버리고 들어오면 또 배가 고프다.


공복에 조깅을 하는 것이 몸이 가볍고 뭐 그렇다. 어떻든 올해는 2월인가 하루 빼고는 매일 한두 시간 정도 달리며 걸으며, 그렇게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할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뇌를 텅 비우고 무의 상태로 조깅을 한다. 달리면서 뭔가를 떠올리고 무엇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란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라 멍 한 상태의 나의 뇌로 알아서 어떤 생각이 들어오기도 한다.


달리는데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게 짜파게티의 냄새였다. 그때부터 허기가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통은 공복이라도 조깅을 할 때 허기가 지는 일 따위는 없다. 그러나 오전에 나의 온몸을 떨리게 했던 이 죽일 놈의 짜파게티 냄새는 허기를 화악 몰고 왔다.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한 후 호기롭게 주방의 선반을 열었는데 늘 있던 짜파게티가 없었다. 이 허탈함이란. 순간이지만 마음의 공백이 엄청났다. 밖에 나가서 사 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눈에 보이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근래에 라면을 끓이면 라면자체의 맛이 좋아서 라면만 끓여 먹게 되었다. 몇 년 동안 라면을 끓여 먹으면 계속 그 안에 이것저것 넣어서 먹다 보니 라면 맛이 뭔지 알지 못하게 되어서 언젠가부터는 라면만 딱 끓여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먹다 남은 두부가 보이고, 양배추 찌끄러지가 보이고, 버섯이 보이기에 다 같이 집어넣고 울진표 고춧가루를 좀 넣어서 끓였다. 이렇게 라면을 끓여 먹지 않으리 했는데 결국 찌개가 되었다. 라면에 두부가 들어간 게 아니라 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은 것 같은 맛이 되었다.


정말 인생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단무지도 없어 깍두기를 곁들여 먹었다.

밥도 말아먹었다.


짜파게티에서 이만 광년이나 멀어졌지만 라면은 늘, 언제나 왜 이렇게 맛있을까. 라면은 이상하지만 끓일 때 이것저것 집어넣어서 라면 맛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 같지만 라면 맛은 없어지지 않는다. 맛있다는 말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떠먹으면 마치 짬뽕 국물을 떠먹는 것 같은 맛도 들지만 끝은 라면 국물이다. 짜파게티가 먹고 싶었는데 먹다 보니 짜파게티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찌개라면은 뜨거울 때 해치워야 한다. 호로록 면을 빨아들이고 국물을 한 모금 떠 마시고 뜨거운 두부를 프릅프릅 먹는다. 며칠 동안 비가 왔다. 비바람이 심했다. 풍랑 특보가 발효되고 외출 삼가라고 했다. 그래도 우산을 들고 조깅할 시간에 강변으로 나갔다. 이렇게 며칠 동안 비바람이 부는 건 장마기간을 제외하고 오랜만인 것 같다. 날도 추워서 우산을 들고 빨리 걷거나 달렸다. 아는 척은 못 하지만 늘 비슷한 시간에 나와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우산을 들고 나와서 조깅을 하고 있다.


별거 아닌 일상의 풍경이 조금 특별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쉽게 발견하지 못하거나 너무 하찮아서 쳐다보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보면 특별한 것들은 늘 나의 주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혼자서 미소를 짓곤 한다. 라면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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