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 앞바다는 마치 지루한 소설 같다. 가짜로 그려놓은 그림 같은 풍경이다. 수면에 돌이라도 던져 파문을 만들고 싶을 지경이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없다. 오롯이 혼자서 무서울 만큼 고요한 바다의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때 해안 가까이 바다가 조금 울렁거리며 높이가 달라졌다. 무슨 신기루 같은 것일 거야. 어째서일까, 갈매기들이 바다의 한 곳으로 몰려들어 낯선 비행을 한다. 그리고는 지루한 바닷속으로 갈매기들이 머리를 마구 박았다. 갈매기들은 입에 물고기를 전부 한 마리씩 물고 다시 하늘로 오른다
바로 그때였다. 해안가의 약간 높은 바다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가 등을 보인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나는 그 광경을 처음 보았다. 나는 처음 고래를 보는 금복이 되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앉아있다가 등에 난 숨구멍에서 힘차게 뿜어대는 물에 흠뻑 젖는다
나는 금복이 되어 손으로 고래를 잡으려 했다. 붉은 눈을 한 달빛 아래에서도 하얀 포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포말을 헤치고 대왕고래가 수면을 가르며 나에게로 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와 고래는 동시에 분기를 했다. 고래는 꼬리를 치켜들고 우아함을 한껏 뽐냈다
고래는 꼬리를 수면에 찰싹 내린다. 그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뜨겁고 차가운 것이 뱃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금복이 된 나는 일어나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고래를 향해 헤엄을 쳤다
고래는 나에게 등과 꼬리를 보여줄 뿐이었다. 고래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나는 고래의 눈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금복처럼 나는 고래에 닿을 수 없었다. 고래는 바다 깊이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래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겨우 손을 뻗어 고래의 등을 만졌다. 매끈한 고래의 감촉은 아이로 남아있으려는 내 마음을 하염없이 건드렸다
고래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칼잡이였다. 사랑을 위해 손가락을 다 자르고 사랑의 실체를 알고 더 이상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던 칼잡이. 하지만 금복에게 그만 사랑을 느끼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는 칼잡이. 하얀 양복의 칼잡이. 마지막까지 사랑을 위해, 사랑 속에서 죽어간 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