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신호등이 많이 보인다. 내가 출퇴근하면서 지나치는 신호등이 오고 가고 통틀어서 한 스무 개는 된다. 신호등은 전부 저런 모양새다. 전봇대에 길쭉하게 붙어 있는 게 이무진이 부르는 신호등이다. 이무진의 노래 속 신호등은 형형색색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지만 현실 속 신호등은 다르게 보인다.
신호대기에 멈춰서 신호등을 보며 늘 드는 생각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는 생각이다. 불안한다는 말이다. 신호등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쇠줄 같은 걸로 고정을 해놨지만 바람이 심한 날에는 흔들흔들 곧 떨어질 것만 같다. 모든 신호등이 이런 모양이고, 모든 신호등이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흔들거리고, 모든 신호등이 불안하게 보인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큰 비닐봉지(세탁기나, 선풍기를 넣었던 것 같은)가 도로 위에서 춤을 추는 경우를 본다. 차들이 생생 지나가면 터뷸런스에 비닐봉지는 하염없이 춤을 춘다. 바람이 불면 이 도로에서 옆의 도로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들이 달리면서 내는 터뷸런스 때문인지 비닐봉지는 한 도로에서 춤을 추고 있다. 모든 차들이 그 비닐봉지를 잘 피해 가지만 한 자동차가 비닐봉지를 밟았을 때 비닐봉지는 이때가 싶어 그 차 바닥에 붙어서 딸려 가기도 한다.
그러면 다른 차들은 당첨되었군,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 한 자동차가 바로 나다. 하고많은 자동차들 중에서 왜 하필 나의 차일까. 차 바닥에 붙어서 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몹시도 거슬리게 들린다. 신호대기에 내려서 비닐봉지를 빼버리고 싶어도 신호가 빨리 바뀐다. 뒤에서 차들이 빵빵 거린다. 어휴 재수 없는 일은 늘 나만 당한다. 머피의 법칙은 악착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 불안 불안한 신호등이 강한 바람에 떨어질 때 나의 차에 쾅하며 떨어질 것만 같다.
투데이 너트를 먹을 때에도 저 부분을 뜯어서 하나씩 꺼내 먹으면 왜 먹고 싶은 건포도는 나오지 않고 맛없는, 먹기 싫은 아몬드가 계속 나온다. 맛없는 거 먹고 나서 맛있는 거 먹으면 되잖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하나씩 꺼내 먹을 때 나는 건포도를 먼저 꺼내먹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째서 먹기 싫은 아몬드만 계속 나오는 걸까.
이건 내 뜻대로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신호등이 불안하게 보이는 것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도로 위의 거대한 비닐봉지가 춤을 추고 있다가 나의 차에 들러붙는 것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건포도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고 아몬드만 줄곧 나오는 것도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넌 여전히 못 생기고 있나? 와 비슷하다. 생긴 건 의지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호등과 건포도와 비닐봉지는 인위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그렇게 생겨먹은 세계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들은 보통 타고 난다. 나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배변활동을 한다. 그 시간이 기가 막히게 30분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다. 매일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 시간에 배변활동을 못했을 때도 있었다. 그때가 군 입대 했을 때였다. 단체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내 마음대로 배변활동을 할 수는 없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밀어내기를 하니까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전부 건강해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사실 건강하면 하루 중 아무 때나 밀어내고 싶을 때 밀어낼 수 있는 몸이 건강한 몸 같은데. 내가 생각할 때 건강한 몸은 그런 몸이라 생각한다. 밀어내기를 할 시간에 밀어내지 못하면 엄청난 압박감이 든다. 만약 그 시간에 밀어내기를 하지 못하고 운전을 했다고 치면, 아 정말 식은땀 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날 때부터 안 좋은 위를 타고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가 좋지 못해서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조금만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되어서 트림이 나오고 소화제를 먹어야 한다. 그런 위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 후로는 늘 더부룩한 속이 사라져서 조깅을 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먹는 양이 많아지면 다음 날 배변활동을 할 때 뭐야? 할 정도로 먹은 양만큼 밀어낸다. 이런 위를 가지고 있으면 생활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일단 소화가 안 되면 그 기묘하고 이상한 더부룩함이 하루 종일 계속된다. 어떻든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은 꼭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밀어내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이게 건강한 거 아닌가.
위가 안 좋은 대신에 천천히 음식을 먹으면 괜찮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현대인이 천천히, 한두 시간씩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틈새라면 먹으러 가서 그렇게 먹을 수 있나? 택도 없는 소리다. 이런 모든 것들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타고 나는 부분이 많이 차지한다.
요즘은 봄이라 봄나물을 꽤나 먹게 된다. 어제도 여러 나물을 먹는데 시어가는 단계에 들어간 나물이 있어서 빨리 먹어 치웠다. 신맛이 나는 게, 하루이틀만 지나면 상할 것 같았다. 시어가는 나물을 먹으면 어떤 사람은 먹지 말라고 하는데 신 음식은 사실 괜찮다. 상한 음식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이지 시어가는 음식, 신 음식, 이미 시어버린 음식은 나쁘지 않다.
겉절이 빼고 대부분의 김치가 발효가 된 음식이다. 시어가는 과정의 음식인 것이지. 김치도 상하면 먹으면 안 되지만 우리는 신김치는 아주 잘 먹는다. 그걸 버리면 아마 욕 들어 먹을걸. 어떻든 신 음식을 먹으면 나는 위가 아주 좋아한다. 무척 괜찮다. 그 시큼한 맛, 상하기 직전의 음식을, 날 때부터 생겨먹은 위가 잘 받아준다.
신호대기에서 신호등을 보고 있으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신호등을 외로울까 안 외로울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외로움이라는 게 나 혼자 있을 때는 오히려 외로움이 들지 않는다. 혼자서는 늘 할 게 많다. 그런데 옆에 누군가가 있을 때 이상하지만 외롭다. 그 사람에게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그렇다고 홀로일 때처럼 이것저것 할 수도 없다. 나는 늘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신호등을 보면 불안 불안하다는 건데… 누군가, 교통개발 과학자가 신호등을 홀로그램으로 띄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