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어 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벚꽃이 피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여기 앉아서 창밖을 보니 날은 아주 따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흐립니다. 어쩌면 하늘보다 저의 마음이 흐린 거겠지요. 시간은 너무나 순수합니다. 때가 되면 헤헤 거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다시 모든 걸 시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이 세상의 무서운 것 중 최고라면 순수한 것들입니다. 바로 시간이 그러합니다.


시간이란 아름답거나 포악스럽습니다. 시간은 중간이란 없습니다. 관능의 대상처럼 모호한 욕망의 존재처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빛처럼 지나치는가 싶으면 달팽이가 길을 닦아 놓듯 천천히 가버리고 맙니다. 시간은 당신이라는 미스터리 하고 미지적인 기간에 종착점을 가져오고 불행을 암시합니다. 시간은 인간의 적이며 동시에 동맹군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함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을 알리는 동력원입니다.


시간이란 것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은 때때로 사람을 조급하게 하거나 서글프게 합니다. 오래전이지만 학창 시절에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나는 서글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서글픔은 당시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서 혼자서 마당의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서 오후 3시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3시는 토요일 오후 3시와는 무척 다릅니다. 금요일 오후 3시와도 다르며 월요일 오후 3시와도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시간을 닮았습니다.


당신도 참 알 수 없었지요. 이만큼 다가갔나 싶으면 저만큼 가버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이만큼 들어와서 나의 곁에 있어 주었지요. 시간이라는 것은 형태가 없고 너무나 기묘해서 사람을 쥐었다 폈다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벚꽃이 팝콘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계신 곳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어서 좋기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밤은 춥습니다. 봄의 바다가 무척 차거나 너무 차가운 것처럼 말이죠. 그럼 또 편지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