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거스턴, 인 더 스튜디오 1975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건강이니 뭐니 하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인간이다. 하지만 담배가 몸에 맞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먹은 음식을 다 토하고 만다. 어릴 때에는 그걸 극복하리라 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군대에서 담배가 보급품으로 나오는데 한 대만 피우면 그전에 먹은 음식물을 다 토해버리는 것이다. 식후한대는 어쩌고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나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또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피우는 담배야 말로 정말 맛있다는데 나의 경우는 술자리에서 술김에 담배를 피우는 순간 그걸로 그 술자리는 끝이다. 술은 물론이고 안주로 먹은 것까지 전부 게워내야 했다.
오바이트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속에 있는 내장들이 전부 목구멍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더러운 기분이 들며 눈동자가 막 튀어나올 것처럼 고통스럽다. 근래에는 그런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이제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사실 인간이 고통 자체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그 고통 때문에 인간은 삶을 이어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통으로 인해 힘들었던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그때 그 아픔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아픔 자체는 기억나지 않고 기억해서도 안 된다. 아무튼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단지 그렇다. 담배만 피우면 먹은 음식물을 다 토하기 때문이다.
담배냄새는 맡기 싫은 냄새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대부분 싫은 냄새는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다. 머리냄새, 발 냄새, 입 냄새 등 씻지 않고 있으면 풍기는 아주 묘한 냄새가 있다. 노숙자들 옆에 가면 나는 인간의 냄새. 인간 자체는 아마 지구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씻지 않으면 혀로 핥아서 위생을 유지하는 야생동물보다 더 심하고 더러운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독한 냄새도 중독이 되면 또 좋아서 계속 찾아서 맡는 사람도 있다. 정수리 냄새가 좋아, 나는 너의 은밀한 곳의 냄새가 좋거든, 발 냄새가 이상하지만 계속 맡게 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담배도 인간만이 피워서(간혹 침팬지가 피우는 영상도 있지만) 냄새가 아주 싫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담배냄새가 무척 싫지만 괜찮을 때가 있다. 왜 있잖아, 갓 목욕을 하고 나와서 바로 피우는 담배 냄새, 정확하게는 담배 연기의 냄새. 그건 또 이상하지만 냄새가 나쁘지 않다. 목욕 후 냄새와 섞여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렇게 싫어하던 담배 연기 냄새가 괜찮은 냄새라고 느꼈다. 담배 연기 냄새가 싫지 않다니.
너무너무 싫어서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생겨난다. 인간관계도 그럴 때가 있다. 저 새끼 너무너무 싫어서 내내 어떻게 피해 다닐까, 어떻게 골려 줄까, 소설에 등장시켜 파리로 변하게 만들어 파리채로 탁 찍어 죽여야지 같은 생각을 내내 하다 보니 기묘하게도 밀어내는 관계가 당기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남녀도 그럴 때가 있다. 죽도록 좋아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좋아한 그 이유가 이혼하는 계기가 되는 것보다, 너무 싫어서 티격태격하다가 좋아하게 되어서 끝까지 같이 나란히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담배 냄새가 너무너무 싫을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싫은 냄새인데 김 부장님 말이야, 점심으로 비빔냉면 먹고 커피믹스 한 잔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때 말 할 때 냄새가 아후, 게다가 말이지 담뱃내가 손가락 사이에 뿌리까지 박혀 있어서 담배냄새가 김 부장에게서 늘 나는데 너무 싫어. 재떨이에 박힌 담배의 찌든 내가 손가락 사이에 들어붙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냄새는 너무나 싫다. 생각해 보면 담배냄새는 평균적으로 싫은 냄새에 속하지만 피우는 사람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는 거 같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이가 피우는 담배냄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피우는 담배냄새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욕 후 바로 나온 그녀가 샴푸향을 휘달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냄새가 그렇게 싫지 않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담배냄새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말인데 담배 연기 냄새를 비누냄새나, 상큼한 페브리즈나 오렌지 향, 짜장면 냄새가 나는 걸로 개발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