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컬러가 가장 먼저 반긴다. 컬러가 가득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만약 어떤 문제로 인해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흑백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만 두려움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흑백사진이 컬러사진보다 더 좋은데 흑백사진이 더 좋은 이유는 흘러넘치는 컬러사진 속에서 소수의 흑백사진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채소의 녹색도 꽤 아름답다. 녹색의 시원시원한 컬러는 산으로 가면 볼 수 있다. 녹색은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꽃이나 풀 같은 녹색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녹색은 연꽃의 녹색이다. 연꽃은 녹색이 아주 짙을 때 그 향은 은은하게 멀리멀리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이 미칠 것 같은 토마토의 붉은 컬러는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토마토는 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찌개나 붉은 양념이 들어간 탕에도 토마토가 들어가면 맛있다. 찌개나 탕을 자주 해 먹지 않지만 라면은 왕왕 먹기 때문에 토마토를 어김없이 풍덩 빠트려 먹는다.


나는 지브라 패턴만큼 수박의 이 무늬도 패션에 분명하게 확고한 자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한다. 녹색의 바탕에 검은 줄이 그어진 수박의 이 무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데 다 다르며 다 아름답다. 검은 줄무늬도 스포이트로 물에 약물을 떨어트리면 퍼지는 것처럼 몹시 형이상학적이다.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면 수박의 무늬를 패션에 입히라고 하고 싶다.


귤은 귤만의 색이 확고하다. 흔히 주황색이라고 하는데 이 주황색이 어울리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귤이다. 다니다 보면 가끔 주황색을 보기도 하지만 귤만큼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파트의 색이 주황색이면 참 좋겠는데 여름이면 더워 보일까.


마치 크리 종족의 머리카락 같다. 크리 종족의 머리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참외의 노란색도 꽃이 가지는 노란색만큼 확고하다. 확고한 노란색이다. 음식 중에 노란색이 있다면 사람들은 카레라고 하지만 카레는 노란색이 아니다. 참외는 정말 노란색이다. 나는 참외를 껍질 채 먹는 것을 좋아한다. 토마토는 시원하지 않은 토마토가 맛있는데 참외는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참외가 좋다. 잘 씻은 다음 껍질 때 와작와작 씹어 먹는 맛이 좋다.


멜론의 사진을 찍을 때 멜론의 무늬가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을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직원이 와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내가 5분이나 멜론의 무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은 내가 멜론의 무늬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멜론을 보며 뭔가 문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튼 멜론의 무늬가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보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해봐야. 이런 멜론의 무늬를 환 공포가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하지만 환 공포가 없는 나는 마치 지구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멜론의 이 무늬를 보는 것이 좋다.


이렇듯 컬러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온통 흑백사진뿐이라면 또 지금처럼 흑백사진이 멋지고 드라마틱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온통 흑백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말 재미있었다. 흑백이라서 더 재미가 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눈을 뜨는 순간 잠이 들기까지 형형색색의 컬러를 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컬러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게 일상이 되어 버리니까 컬러의 미학에 쉽게 빠져들지 못한다. 이 말은 아마도 에르메스가 너무 갖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뼈 빠지게 일해서 가방을 구입을 했을 때 그 심정이 3년 뒤에는 다 사라진다는 말이다. 슈퍼카를 몰아도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리면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게 우리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컬러의 미학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눈으로 보면 평범한 것들도 사각의 카메라 뷰로 보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인다. 카메라를 통해서 컬러를 담으면 이 컬러 속에 또 다른 미학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모든 컬러는 인공적인 컬러다. 컴퓨터, 키보드, 책 표지, 텀블러, 색상, 피규어의 컬러는 전부 인공적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컬러를 담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를 찍으면 그 컬러에 빠져든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 보면 휴대전화를 꺼내서 진열되어 있는 물품이나 식품을 찍게 된다. 채소를 찍고 보니, 마치 트레이시 스피리다코스라는 행성에서 잡혀와서 녹초가 되어 축 늘어져 있는 외계인들 같았다. 어쩌다 보니 외계인들은 지구침략을 앞에 두고 은하호를 탄 별나라 삼총사에게 몽땅 잡혀버렸다. 은하호는 야마토와 약간 닮은 듯했지만, 호세, 꺽다리, 땅딸이가 조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은 오래전 어린이였기 때문에, 태양에너지로만 움직이는 은하호를 잘 조종해야 했다. 아이들이었던 그들은 어린이왕국에 초대받아서 그곳을 구경하던 중 박쥐성 카이젤의 부하해적의 공격으로 루루공주가 납치되었고,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호세, 꺽다리, 땅딸이는 은하호를 타고 박쥐성에 잠입하게 된다. 외눈박이 괴물과도 싸웠으며, 우주거미에게 쫓기며 맹물로봇의 자폭 등, 고난을 겪으며 그들은 성장을 했다.


어른이 된 세 명은 은하호를 재정비해서 트레이시 스피리다코스 행성에서 지구침략의 계획을 알아내고 가서 외계인을 잡아오는데................ 마트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정말 미친놈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주 멍하게 넋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장바구니를(저는 커트를 몰고 다니지 않습니다) 들고 늘어진 배추 앞에서 가만히 서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높은 굽의 힐과 날씬한 다리를 덮은 가죽바지, 리얼 폭스의 코트는 대형마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수한 화장의 여자가 나에게 아는 척했다.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몇 해 전에 찾았던 고급 술집, 초이스 하우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였다. 미인이라 할 만큼 예쁜 얼굴은 변함없었고 큰 키 덕분에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어정쩡하게 서서 인사를 한 다음, 서로 시간도 많고 해서 마트 2층의 카페로 갔다.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했고, 여자는 녹차를 마셨다. 계산은 여자가 했다. 나는 요즘도 잘 다니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이제 초이스 하우스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여자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것은 매춘부다. 매춘부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사랑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욕망의 주체인 남자는 육체의 사랑에 집착을 할 뿐이다.


그런데 여자는 한 손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아침에 손님이 테이블에 돈을 놔두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에게 있어서 사랑의 주체는 타자였다.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주체로 보고 욕망에 맞춰 나가는 수단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손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 된 것을 알고 정신적으로 마찰을 일으켰다.


여자의 마음속에 또 다른 자아라고 하는, 슈퍼에고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손님에게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손님에게 여자는 그저 욕망의 분출구일 뿐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는.....라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 어제는 조깅을 하는데 날이 한결 풀린 것 같아서 엄청 달렸다. 고작 1도의 차이에 이렇게 인간은 좌지우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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