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에 밥을 싸 먹는 행위는 자연으로 한 걸음 걸어가 그 안에서 자연의 맛을 보는 느낌이다. 여러 밥도둑 중 깻잎 만 한 것도 없다. 여름에 땀 흘리고 들어와 깻잎에 밥을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내게 대부분의 음식의 추억이 겨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깻잎은 겨울을 벗어났다.


깻잎 꼭지를 손에 쥐었다고 씻지 않고 있으면 손가락 끝에서 꼬릿꼬릿한 냄새가 난다. 얼른 씻어 버리면 없어질 꼬릿 한 냄샌데 계속 맡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쩌면 깻잎 논쟁이 여기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깻잎은 늘 여러 장 붙어있고, 젓가락으로 떼려면 한 손으로 꼭지를 잡으면 그만인데 씻기 전까지 물티슈로 닦아도 그 기묘한 냄새가 손끝에 도사리고 있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깻잎 하면 뭐 니 뭐 니 해도 깻잎 논쟁이다. 이게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냈는지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깻잎 논쟁을 별 거 아니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실제로 상황에 닥치면 아주 애매하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하면 동전의 앞뒤처럼 딱 잘라 나는 이거야!라고 말 할 수만은 없다. 그 상황과 상대방의 관계와,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깊으냐 덜 깊으냐 옅은지에 따라 또 태도가 달라진다.


이 논쟁의 범위를 확장시키면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한가, 로 접근한다. 말 그대로 친구 사이지만 애인과 또는 남편과 싸웠을 때 남자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속상한 일을 토로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는 여자사람 친구가 있는데 애인과 만나지 못할 때 연락이 오면 예전처럼 그렇게 허물없이 만나는 게 가능할까.와 같은 범위로 좁혀진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이렇게 하면 머리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드 오자크를 보면 주인공의 아내의 애인이 죽었는데 그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 주인공이 아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가 집에 오면 집을 비워주며 이야기를 나누라 한다. 세상에는 이런 복잡하고 애매하고 이상한 관계와 상황들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득하다.


이런 논쟁이나 이야기는 자유의 상징인 나라 미국에서 더 유난 떨지도 모른다. 그저 쿨하게 보이지만 이미 30년도 훨씬 전에 헤리가 셀리를 만나면서 이 같은 뉘앙스를 잘 보여주었다. 여사친이나 남사친이 깻잎을 젓가락으로 등신처럼 잘 못 뜯을 때는 야, 한 손으로 꼭지를 잡고 젓가락으로 뜯어.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깻잎은 우리나라 밖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만 점령할 수 있는 음식이 있어서 재미있다. 번데기 같은 경우 아는 외국인에게 나는 먹어보라고 놀리는데 기겁하거나 얼굴이 도화지를 구겨 놓은 표정을 짓지만 번데기도 저기 늪지대가 많은 나라에 가면 살아있는 채로 먹기도 하니.


대만에는 취두부가 있고, 일본에는 와사비, 중국에는 뭐가 있을까. 아무튼 각 나라마다 자기네 문화의 특색 있는 음식이 있는데 지금은 다 같이 먹는다. 취두부는 냄새가 고약해서 그렇지 막상 먹으면 괜찮다. 아마 우리 홍어가 씹었을 때 엄청난 타격을 더 줄지도 모른다. 홍어는 시적으로 온몸으로 오줌을 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먹어도 암모니아의 그 킁 한 맛이 난다.


그러나 취두부도 대만에서 강도가 다 다르게 편의점에서도 팔리는 것처럼 홍어도 시장에 가면 센 거, 덜 센 거, 약한 거 이렇게 판다. 홍어는 뜨거운 국이나 라면에 넣으면 킁 한 맛이 묘하게 길게 여운이 남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깻잎도 하나의 허브로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아시아 쪽에서는 깻잎을 전부 먹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만 먹는다고 한다. 근래에 일본에서 깻잎의 맛에 반한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깻잎은 통조림도 맛이 있어서 인기가 많다.

깻잎의 문제라면 이렇게 밥과 함께 먹으면 밥을 너무 먹게 된다고 한다. 먹을수록 더 배가 고파지는 희한한 음식이 깻잎이다. 고기를 구우면 역시 깻잎에 싸서 먹으면 맛있다.

깻잎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이라면 그 시간만큼은 역시 행복하다. 깻잎은 마냥 어른의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깻잎을 하나씩 발라서 아이의 숟가락 밥 위에 올려주면 아이는 맛있게 그걸 먹는다. 깻잎도 집집마다 양념의 맛이 다르지만 아이들도 다른 어른의 음식에 비해 맛있게 먹는다.

깻잎을 다 먹고 나면 그릇 밑에 깔린 양념장에 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으니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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