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밝고 어두운 곳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저는 생각만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매일 불안합니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늘 불안하니까 불안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늘 불안한데 어쩌다가 불안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더 불안합니다. 그래서 잘 지내려면 언제나처럼 불안한 게 낫습니다.


실은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그런 마음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팔로워 중 몇몇 사람이 나도 그렇다며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같은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위로를 받느냐 한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불안을 공유한다고 해서 나의 등에 붙어 있는 불안이 일어나서 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기주의자라 저만 불안한 게 낫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신다면 지금부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저는 안약을 넣을 때 늘 왼쪽 눈에 먼저 넣기에 한 번은 오른쪽 눈에 넣으려는데 눈꺼풀이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더군요. 그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바다가 유난히 검푸르고 철썩이는 것이 꼭 드뷔시의 라 메르를 듣는 것처럼 격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멍하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 손짓이 꼭 당신의 손길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조금 슬픈 일들이 눈처럼 쌓여 있을 뿐인데 지쳤다는 생각이 하루의 언저리에 닿아 저의 영혼이 몰락하려고 할 때 당신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무릎을 꿇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처럼 비참한 삶이라 안약 하나 제대로 넣지 못해 그만 달콤한 손짓을 보곤 합니다.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도 잊은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저 조금 슬픈 일일 뿐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가슴에 주름이 잡힌 여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영상 속 여자의 얼굴은 모릅니다. 여자는 누워있고 유륜이 크게 박힌 가슴이 옆으로 처져 있었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가슴의 여자는 가슴에 구멍이 나 검은 피가 고름처럼 흐르는 것도 잊은 해 슬픔 속으로 잠들어 갑니다. 여자의 눈은 필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라든가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을 들키기 싫어 카메라는 여자의 구멍 뚫린 가슴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고름처럼 저는 또 줄줄 비어져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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