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먹고 나면 접시와 그릇에 양념이 한가득
나는 설거지를 밥 먹자마자 해버린다. 설거지를 한다, 가 아니라 해버린다, 에 가깝다. 성격이 급한 탓도 있지만 밥을 먹고 난 후 밥그릇에 물을 부어 놓지 않으면 밥알이,,,, 어휴. 그때는 정말 쇠수세미까지 꺼내야 할 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숟가락을 놓자마자 들고일어나서 바로 설거지를 해버린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배부르게 먹고 난 후 좀 이따 하지 뭐, 라는 생각에 소파에 등을 대는 순간 뇌는 귀차니즘으로 잠식되어 발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다. 그러면 설거지가 슬슬 하기 싫어진다. 밥을 먹자마자, 숟가락을 놓자마자 그릇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냥 바로 설거지를 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매일 조깅을 한다. 올해는 오늘까지 3일을 빼고 매일 한 시간 정도,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렸다. 그래서 평균 일 년에 355일 정도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달린다. 그 덕분인지 오래전에 입던 옷도 아직 잘 입고 있다. 매일 조깅을 하고 있지만 조깅하기 직전까지 매일 조깅하기 싫어서 갈까 말까 갈등을 겪는다. 매번 그렇다. 하지만 일단 운동화를 신고 강변으로 나가면 달리게 되고 그러면 심장과 다리에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즐긴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좋다고 받아들이면 고통이 없이 평온한 날이 별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조깅을 하면서 고통을 제대로 느끼려고 한다. 아마 헬스장에서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며 덤벨을 드는 사람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밥을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일어나서 재빠르게 설거지를 해버리지만 그전까지 늘 갈등이다. 배가 슬슬 불러오니까 그대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푸슈 하며 늘어지고 싶다. 설거지 따위 좀 이따 하거나 미뤄뒀다가 내일 해도 큰 문제가 아니잖아? 흥. 하지만 숟가락을 놓는 순간 일단 일어난다. 그러면 설거지를 해치우게 된다. 설거지도 겨울이라 해서 뜨신 물에 하지 않는다. 겨울이면 더더욱 차갑고 차가운 물에 설거지를 한다. 손에 차가운 고통이 머리로 오는 게 짜릿하다. 나쁘지 않다. 주부습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설거지하는 양이 적다. 그러니 주부습진이니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성격이 급하지만 또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려가고 올라갈 층을 누르고 가만히 있는 편이다. 문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보통 성격이 급한 사람의 특징을 엘베의 문 닫힘 버튼을 한 열 번은 눌러야 문이 빨리 닫히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앞에 두고는 꽤나 느긋하다. 높이 올라갈 때 중간에 누군가 타서 한 번 멈추어도 그렇게, 솔직히, 마음속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생리현상이 급박할 때 한 번 중간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 탔을 때 아, 이런 신발. 하고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니까.
또 내가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깔끔함을 떨지만 또 어떤 부분은 그 반대다. 자동차 세차는 2년 동안 하지도 않았다. 목숨 걸고 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설거지만은 또 다르다. 설거지의 관건은 물기 제거다. 마지막에는 싱크대의 물기를 싸아아악 제거를 해야 속이 시원하다. 싱크대에 물기가 묻어 있으면 아주 지저분하게 보인다. 씻는 건 싫은데 샤워하는 건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까. 그래서 조깅을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샤워의 명분을 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설거지는 깨끗해지는 게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이 뻥 꿇리는 것 같다. 붉은 양념이나 고깃기름이 잔뜩 묻은 접시나 그릇이 순식간에 깨끗해지는 모습이 바로 눈에 보이니까 야호! 다. 세상 시원하다. 그런 다음 모든 물기를 싸악 제거한다.
물기 제거는 군대에서 배우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설거지를 하고 물기를 제거하는 것보다 더 스케일이 큰 화장실을 청소하고 그 안의 모든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화장실의 대변기나 소변기를 물청소를 한 다음 걸레를 들고 손으로 일일이 닦아서 물기를 싹 제거한다. 막내들이 그 일을 하는데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빠르게 하지만 아주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점오 시간이 맞출 수 있다. 시간을 끌게 되면 고참들에게 두드려 맞는다. 그래서 물기를 제거하고 나면 땀이 뻘뻘 난다. 그 짓을 매일 한다. 그러나 점오가 끝나면 화장실은 그야말로 화. 장. 실. 이 된다.
막내만 벗어나면 화장실 물기 제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재수가 없어서 막내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으면 매일매일 그 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청소에 미쳐 씻기지 않은 변기의 묻은 똥도 일일이 손으로 다 닦아서 손에 똥독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도돌도돌하니 으 할 정도로 독이 오르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을 때 바로 윗 고참이 연고를 발라주는 장면은 또 가슴이 찡하다.
그래서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설거지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깨끗하게 할 걸. 그럴 거야. 안 해서 그런 거지 못하는 게 아닐 거야.